【L.O.H】Episode. 늑대와 수군 무관 - Part. 낮에 나온 반달 - 1 ♧:1920'S(소설):♣

1. 이 소설은 고증 개무시, 막가파적 구성을 가진 대체역사라 부르기도 뭣하고 판타지라 부르기도 뭣한 그냥 잡설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2. 거기다가 군대에서 구상한거라 정말 대중이 없습니다.

3. 쪼가리입니다.

4. 그래도 에러는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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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of Highness


Episode. 늑대와 수군 무관



Part. 낮에 나온 반달. - 1



이 나이에 7.62mm 탄환 5발을 꽉 채운 5호 소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탄띠에 탄입대까지 완전무장 한 채 기관차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었다. 황금 같은 여름방학 동안에 흙먼지와 석탄연기를 뒤집어쓰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사령차인 1호차 앞문을 열고 탄수차 외부난간에 발을 내딛자, 평평하지 않은, 참으로 불친절한 바닥이 시속 60km로 질주하면서 바람을 몰고 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등 뒤의 소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바 아니다.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전투복 상의 단추가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오른손을 들어서 전투모를 꾹 눌러썼다. 아침시간대나 저녁시간대라면 몰라도 지금은 오전 1145, 봄의 벌판에 내리쬐는 햇볕은 살갗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익혀댄다. 어찌되었거나 열차승무원이다. 승객을 대해야 하는 승무원에게 얼굴 관리는 의무다. 코와 입을 덮은 마스크 끈을 꽉 졸라맸다.

이지호입니다!”

아르타스 타이샨입니다!”

삐약이들, 왔냐!”

기관차 운전실을 지나 전두부의 기관총좌로 다가가자, 5호 소총을 어깨에 멘 채 쌍안경을 들고 경계 중이던 1조의 안기야 타르하치 사장이 손을 흔들었다. 퍼이기야 도타 일등사도 제12호 기관총을 오른손으로 붙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삐약이교도사들은 차가 흔들리거나 말거나 일단 되는대로 경례를 붙였다.

, 어째 삐약이들만 왔냐? 네 사수는?”

타르하치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물었다. 니이슬렐후리-하르빈 구간에 투입하는 대청육군 만주철도사령부 예하의 미카도 타입 기관차들은 전두부 기관총좌에 지붕과 가림판을 설치해 바깥만큼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래먼지가 잔뜩 불어 닥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좋든 싫든 마스크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체로 식중독이라서 저희만 남았습니다.”

뭐야,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지호와 타이샨이 번갈아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수비대원들 중에서 근무자들과 두 교도사들만을 제외하고 죄다 식중독이란 말인가.

니들끼리 할 수 있겠어? 안 되면 우리가 하나씩 붙을 테니까.”

저희끼리 해 보겠습니다.”

타르하치의 제안은 고마웠지만, 초직 근무자들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경계하면서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되었다. 교도사들끼리 근무를 선다는 것은 이지호도, 타이샨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꾸벅꾸벅 조는 정규사들을 옆에 두고 근무해봐야 별 다를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뭐…….”

두 정규사들은 스스로도 멋쩍은 제안이었는지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 여기 진짜 조심해라. 국경이야 통과했는데, 이 동네 툭하면 마적 나온다. 나도 지난달에 한 번 만났고. 유사시 수칙은 알지? 읊어봐.”

. 경적 세 번 울리고 전성관으로 상황 전파!”

전성관으로 교전 개시 명령 내려오면?”

부사수가 조명탄 발사와 동시에 기관총 제압사격 개시. 이상입니다!”

잘 외웠네. 아르타스? 네 사수 누구냐?”

코더 아투허 일등사입니다.”

철저하게 사수제로 운영되는 철도사령부 교도사 실무실습에서 칭찬 받으며 사수가 누군지 질문을 받는 것은 입 꽤나 찢어질 일이다. 두 정규사가 자리를 벗어나자, 이지호와 타이샨은 곧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짧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랫동안 좋아하며 넋 놓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어디보자……. 치치하르까지 한 100km인가?”

철로변의 거리표시판과 지도를 대조해보며, 이지호는 현재 열차의 위치를 핀을 꽂아 표기했다. 이 열차는 국제 특급이라 무두리우라 같은 시골의 작은 간이승강장에는 정차하지 않는다. 만몽국경을 넘어서 첫 역은 치치하르, 앞으로 거진 2시간을 달려야 닿는다.

지금까지 실습 나갔던 국내선들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지루해서 몸이 흐물흐물 녹아 늘어질 법한 지루한 구간이다. 아니, 국제선도 베이핑이나 경성 가는 열차들은 이렇게까지 지루한 구간은 없다. 어디엔가는 산골짜기 작은 마을이 있고 기차만 보면 손을 흔드는 어린아이들이 있으니까. 더불어 한국으로 들어가는 국제열차는 전기기관차라 이렇게 등 뒤에서 후끈거리는 열기를 뒤집어 쓸 일도 없다. 근무교대 5분도 지나지 않아 온 몸에 뒤덮인 먼지들이 땀에 쓸려나간다.

아우, 치치하르까지 뭐 하지.”

타이샨의 옆에서 쌍안경을 집어들면서 이지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경계근무중이니 책도 신문도 읽을 수 없다. 딱히 지켜보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애초에 남들 눈 속여서 챙겨오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잠을 자는 것도 불가능하다. 언제 차장이 이 전두부 초소에 들이닥칠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순찰을 돌지 않는다 해도, 마적들이 들끓는다고 알려진 이 구간에서 졸고 있다가 앉아서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벌써 마적의 습격으로 사망한 동기들이 셋이나 나온 상황에서 두 사람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다.

, 그 한국인 말야.”

? ?”

만주에 한국인은 꽤 많지만(이지호 자신도 한국계지만) 이런 북쪽 구석탱이까지 찾아오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다. 몽골 같은 벽지에 찾아가는 한국인이라면 더욱 그렇고, 그 몽골 벽지를 찾아가는 모험을 하면서 비행기라는 혁명적인 교통수단을 두고 국제열차 타는 한국인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적다.

무슨 일일까?”

그냥 군인이랑 외교관이던데? 출장 나왔다가 귀국하는 거겠지.”

…….”

타이샨은 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창밖만 줄창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지호는 뭔가 묘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제 스물 갓 넘겼을 법한 청년이 무려 부령 계급. 아무리 군인들이 떼로 죽어나간 대전쟁이 5년 전에 끝났다고는 해도, 엄청난 고급 무관 부족에 시달리는 만주군에서조차 부령 계급장 달려면 서른 줄에는 들어서야 한다.

아니, 부령은 얼마 전까지 온 세상에 전쟁통이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 옆의 여자 외교관은 뭘까. 역시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그런데 차장에 여객행정관까지 나타나 굽신댄다. 얼핏 들은 말로는 사무관이라던가 서기관이라던가 하는 것 같다. 덕분에 운전과 생도인 이지호는 한국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때 아닌 접대에 동원되어 고생 깨나 한 참이었다. 간만에 편한 한국어로 대화를 한데다가 손님들이 까탈스레 굴지도 않고 교양 있게 응해 준 덕에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닥 고생을 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실무자들 죄다 드러누운 참에 읽던 소설 다 못 읽은 것은 아쉽기 그지없었다.

설마, 애인은 아니겠지.”

헤헹, 너 설마 그 아가씨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냐? 걱정돼?”

내가 너냐? 손님들마다 한 번씩 눈에 박아 넣게?”

아니니까 더 문제 아니냐. 손님은 손님일 뿐이라던 녀석이 갑자기 왜 처음 보는 손님들한테 신경은 쓰는데? 너 지난번에 너 쫓아다니던 그 한국인 여학생한테도 눈길 한 번 안 줘놓고.”

그런 여자애가 언제 있었냐!”

이 녀석이 말을 지어낸다. 이지호는 바람 소리와 보일러 물 끓는 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뒤지지 않을 기세로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리고는 0.5초 만에 입을 가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근무 중 잡담은 금물이다.

이러다가 차장님 오실라.”

으으…….”

생판 모르는 남이 시비 거는 것보다도 몇 배는 얄밉다.

이럴 때 정말 마적이라도 나타난다면 시원하게 총이라도 써 볼 텐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또 불러주십시오.”

. 고맙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어김없이 차장이 나타나 식사 전반을 꼼꼼히 체크해 주었다. 주문이 밀릴 새도 없이 곧바로 상이 차려졌다. 강현과 박화원 모두 괜찮다고 몇 번을 말 한 후에야 차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아무리 1등석 승객이라고는 하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배려다.

휴우.”

후아…….”

음식을 눈앞에 두고 강현과 박화원, 두 사람 모두 성대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살짝 목덜미를 긁적이던 강현이 고개를 들자, 앞에는 역시나 미간을 찌푸린 박화원이 있었다.

먹을 거 앞에 두고 한숨 쉬지 말랬죠?”

먼저 쉰 건 박 서기잖아요?”

난 작게 쉬었고요!”

크건 작건 한숨이면 다 같은 한숨이죠!”

밥 앞에 두고 소리 지를 거예요?”

우와, 이 아가씨 봐라. 대체 어떤 집안에서 뭘 먹고 키우면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워 지는 겁니까. 이번에 경성 들어가면 반드시 박 총독에게 물어보자. 박 총독 못 만나면 그 동생들에게라도 물어봐야겠다. 강현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선배들이 구워먹고 남긴 생선 대가리를 아구아구 씹어 먹던 열네 살 그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뻔뻔했던 기억은 없었다.

그보단, 의외네요.”

뭐가요?”

함장이었잖아요. 누가 시중 들어주고 했을 거 아니에요?”

역시, 이 아가씨는 수군 제독의 딸이다. 군복을 입고 있는 성지유 외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박화원 뿐일 테다. 그런데 그 지식을 왜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써 주지 않는 걸까. 강현은 그 점이 언제나 의문이었다. 하지만 물어본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지는 않을 테다.

그 사람들이야 저보다 어리거나 저보다 경력이 짧거나 둘 중 하나는 하잖아요. 저 차장은 척 보기에도 삼촌뻘은 될 사람이 그러니까 말이죠.”

그렇긴 해요. 집사님도 저렇게 까진 안 한다고요.”

그렇지요. 아가씨네 댁은 무려 집사가 있었지요. 강현은 그 집사 딸린 연희동 반남박씨네 대저택에서 먹었던, 그리고 파리의 연회에서도 먹었던 요상한 후식을 떠올렸다. 뭐라고 했더라. 셔벗? 달아서 좋기는 했지만 아마 두 번 다시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얼음에 사카린이나 뿌려 먹어야지.

그러는 박 서기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네요.”

뭐가요?”

그런 거 잘 먹으니까.”

맛있는데, 왜요?”

그게 놀랍다고요. 다른 아가씨들 봐요.”

오늘의 요리는 돼지 부속을 곁들인 만주식 순대볶음이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 몇몇 젊은 아가씨들은 기겁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아마 관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만주 상류층 집안 자제들이 아닐까. 이 맛있는 걸 왜.

고생 해 봐야 정신 차리죠.”

고생이라…….”

이렇게 잘 차려입은 아가씨가 고생을 운운하고 있으니 다시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마냥 비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분명히 박화원은 그 나이 또래, 그 주변 사람들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 할 고생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강현 자신과 함께 겪었다.

혹시 후회라든가, 안 해요?”

후회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돼지 귀가 오돌오돌 씹히는 소리가 바퀴 굴러가는 소음을 뚫고 간신히 강현의 귀에 닿는다.

후회를 어떻게 해요? 부령님 안 만나겠다고 안 만날 수 있어요?”

몽골에선 두 번 다시 나랑 같이 안 다닌다고 그렇게 투덜댔으면서?”

그거야, 그때는!”

그건 뭐? 그때는 뭐? 부슬부슬 부서져가는 돼지 간의 맛을 음미하며 강현이 박화원을 빤히 쳐다본다. 박화원은 그런 강현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입 안에 든 것을 꼴깍 삼켰다. 아마 돼지 위 부위였을 것이다. 그거 쉽게 안 씹힐 텐데. 생각난 김에 강현은 그 돼지 위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한동안은 말을 안 해도 되겠지.

, 몰라요!”

외교관의 화법이 전혀 아닌데요?”

평소에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따지는 쪽을 선호하던 박화원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강현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구경거리였다.

그거야 말이 통할 때에나 하는 거고요. 회담에서도 말 안 통하면 한 쪽이 자리 박차고 일어난다고요.”

그럼 내가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예요? 예를 들면?”

라이베리아. 아니 거긴 영어 쓰니까, 아비시니아.”

왜요? 그 나라가 그렇게 막무가내예요?”

외무부에 암하라어 할 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암하라어라니!

내가 미지의 언어라도 쓴다는 거예요?”

억울하면 정말 말 안통하고 막무가내인 나라들 들어줘요? 일본, 북양, 동러시아, 소련,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왜 나와요!”

테러하잖아요.”

400년이나 식민통치 받으면서 테러 좀 하기로서니 일본이나 소련과 동급에 놓는 거냐! 자신에게 게일어 시를 가르쳐줬던 아일랜드인 영국 해군 장교를 기리며, 강현은 한국인으로서 무한히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 보니 아일랜드는 아직 나라도 아니잖아.

몽골도 넣을 걸.”

아직도 니이슬렐후리 가는 길에 가방 뺏긴 일이 분한 모양이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 말을 해도 안 가르쳐주니 강현 입장에서는 쉽게 동조하기도 반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 대고 막무가내로 한 건 아니잖아요. 나라가 발전이 늦어서 그런거지.”

지금으로써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정도일까. 사석이라고는 해도 현직 외교관이 다른 나라에 대한 평을 함부로 해서 좋을 일은 없다. 강현도 그 정도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박화원의 발언이 어디까지나 외교 밖의 문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한한 것이라고 바로잡아 줄 필요는 있었다.

어쨌든요.”

박화원은 다시 돼지 귀를, 아니 자기 접시에 놓인 돼지 귀를 다 먹은 모양이다. 몇 번 뒤적이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돼지 간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 돼지 귀는 몇 개 남았는데, 하나 줄까 말까. 강현은 잠시 고민했다. 아니, 괜히 줬다가 또 한 소리 들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박화원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깃거리가 뭐가 있을까. 어째서 몇 년을 함께 일 한 사무관 아가씨와 이야기 하는 게 방금 만난 다른 나라 청년 무관들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인지, 강현은 제발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할 짓이 없다면, 일단 현재 위치가 어딘지 확인이라도 해 보자.

치치하르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89km 정도? 2시간 좀 안 걸릴 거예요.”

후음…….”

마지막 순대를 입에 넣으면서, 박화원은 벽에 걸린 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강현도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지금 시각은 베이핑 표준시로 123. 치치하르 도착 시각은 1343분으로 되어 있다. 제대로 달린다면 정확히 100분 남았다.

제대로 달린다면, 말이다.

표정,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아가씨는 꼭 사람 방심하고 있을 때 찌르고 들어온다.

이 구간이거든요.”

, 국경 위험지대 말인가요?”

강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 푀더러비치 폰 운데른 슈테른베르그(Роман Фёдорович фон Унгерн-Штернберг)…….”

박화원이, 혀 굴러가는 발음으로 유창하게 그 이름을 읊었다.

니이슬렐후리 영사관에서 브리핑 받은, 만몽국경 북부, 대흥안령 일대의 지배자.

수년에 걸친 대전쟁과 이어진 북양과의 전쟁, 급격한 관내상실, 숙청, 군벌마적의 발호로 인한 내전 등, 만청 중앙정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안 그래도 적은 인구에 동아시아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몽골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 만청이 만주로 복귀하면서 대흥안령 서쪽 땅을 몽골에 할양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지키지도 못할 땅 떠넘기는 것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아무 일 없겠죠?”

수저를 내려놓고 물어보는 박화원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아가씨는 차가운 북대서양 속으로 침몰해가는 배 위에서 승객들을 달래야 했고 소련군과 러시아군 간의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 한 복판에 서 있었으며 몽골 초원의 비적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제 다 왔으니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렸다.

외교관은 상대가 명확한 실체를 가졌을 때, 그리고 그 상대가 테이블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에야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 말을 걸 수도 없는 상대 앞에서, 경성대 역사상 첫 여성 졸업자이며 외무고시 첫 여성 합격자 겸 최연소 합격자인 이 아가씨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강현 자신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휘할 병력도, 무기도 없는 군인이 이 상황에서 안전의 증거로 내밀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해가 안 돼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적이니 군벌이니 하는 건 상상도 못 할 나라에 있었는데…….”

물론 이르쿠츠크에서 니이슬렐후리까지 한 달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날려버리기는 했지만, 이르쿠츠크에서 일이 꼬이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쯤 두 사람은 경성에서 편안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었을 테다.

부령님. 그거 알아요?”

박화원의 눈빛이 진지하다.

아니, 진지하다기 보단 자조가 섞여있었다.

외무부에서, 이쪽에 관심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

강현으로써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략적으로 이쪽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을 텐데요? 내가 수군이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육군이 북양전선 다음으로 관심 가지고 있는 데가 여기일 테고…….”

그건 군인들 이야기죠. 어디가 되었든 간에 막사 쳐놓고 자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다. 무관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참 참위 부위들이라면 몰라도, 한국 육군에서 최소한 영관급 쯤 되었으면 대전쟁 때 참호에서 먹고 자보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전쟁 때 참전하지 않아 진급 누락된 정위가 자살했다는 풍문도 도는 판인데.

생각해봐요. 우리 외교관들이 오지에 나갈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프리카는 죄다 유럽 국가들 식민지인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없는 거기에 영사관을 세울까요? 한국 외교관이 오지에 나갈 일이라면 남미 국가들, 아니면 아시아 몇몇 신생국가나 식민지 정도가 전부죠.”

한마디로…….

외교관이라는 건 일은 많긴 하지만 몸은 편하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주 같이 불안하고 불편하면서 일거리만 많은 나라에 누가 부임하고 싶어 하겠어요? 그것도 몽골 업무까지 겸임해야 하는데.”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그것도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이다.

세금을 받아먹는다. 그것은 그럴 일 따위 생각도 해 보지 못한 강현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반드시 그만한 값을 해야 한다.

갑자기, 강현은 뭔가 걱정이 덜컥 들어버렸다.

박 서기는 어떤데요?”

저요? 저는…….”

질문을 받은 박화원은 잠시 고민스럽다는 듯 접시를 옆으로 밀어놓고 생각에 잠겼다.

은연중에, 자기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조금은 편하고 싶다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그 가능성을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강현은 질문을 던져놓고도, 심지어는 불안해하면서도 불안감보다는 당혹감이 앞섰다.

기회만 된다면, 어디든 갈 거예요.”

.”

그 당혹감은, 역시 쓸데없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조금 재미없긴 할 것 같아요.”

왜요?”

할 일 없이 늘어져 있는 나하 영사관보다는 사람도 많고 사건도 많은 만주 대사관 쪽이 재미는 더 크지 않을까.

거긴 수군 무관이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한데…….”

말의 의미를 도통 이해 못 하겠다. 수군 무관이 없는 것과 일의 재미가 무슨 상관일까. 역시 아버지가 전직 수군 제독이라 이건가. 어떻게든 수군 이야기 할 남자가 필요하다는 건가. 혹시 경성에 가면 젖비린내 나는 수군 참위가 집안끼리 결정해놓은 약혼남이라며 갑작스레 얼굴을 들이미는 건 아니겠지. 아니, 잠깐. 이 아가씨가 약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시집가서 애 낳고 집안일 하며 살아간다니. 강현은 마치 조일전쟁 때 태조대왕께서 전사하시고 조선은 여전히 전주이씨 왕가의 지배하에 놓인다는 시나리오를 듣는 듯 하는 기분이 들어 살짝 몸서리를 쳤다.

수군 무관은…….”

대체 왜 필요한데요? 라고 물어보려던 순간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

연달아 세 번 경적이 울린다.

왜요? 무슨 문제 있나요?”

그게…….”

어제 저녁에, 어린 한국계 교도사와 나눴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본다.

일반적으로 만주 열차는 단순 경고용으로 기적을 울릴 때 단 한 번만 울린다. 여러 번 울릴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경적을 울린다.

절대로, 평상시에는 세 번을 연달아 울리지 않는다.

설마…….”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초원의 키 낮은 풀 위를 배회하던 초봄의 먼지들이 날 잡았다는 듯 열차 안으로 들어오려 기를 쓴다. 박화원이 옆에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커텐이 휘날리고 머리가 헝클어져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열차 안에서 이 바람에 피해를 볼 승객들은 없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강렬한 햇볕을 피해 반대편, 북쪽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차 안의 풍경을 확인한 후, 강현은 다시 창밖의 초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끝이 없이 펼쳐진 만몽국경 북부 지대의 초원.

그 시선의 끝은 산맥 기슭이기에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엎드려!”

?”

-콰앙!

박화원을 피신시키는 것보다, 테이블을 들어 창문을 막는 것이 먼저였다.

 

-빠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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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어지간히 불안한 모양입니다.


1년 내내 끝을 못 맺던 글을 하루 사이에 두 개나 일단락지어 올리는군요. -_-;;


덧글

  • 지크프리드 2012/01/03 00:43 # 답글

    미친남작이라.. 주인공 재수에 옴이 정말 제대로 붙었군요.
  • 천지화랑 2012/01/03 09:50 #

    으헝헝헝
  • 지크프리드 2012/01/05 00:24 # 답글

    이 상황에서 생각나는 대사..

    "같이 싸워줄 사람 다 어디갔어? 어디갔어?"
    "과연 같이 싸워줄 사람중엔 누가 있습니까?"
  • 천지화랑 2012/01/05 16:47 #

    죄다 식중독OTL
  • 지크프리드 2012/01/16 18:17 # 답글

    그나저나 나중에 소련과 싸울일 있으면, 즉 청나라나 동러시아 도와줄 일 있으면 도와줄 부대 이름 하나 기막힌 이름 몇개 있습니다만..

    최영 부대와 성계 부대.. 어떨까요? 최영과 이성계는 "홍건적"을 상대로 대단히 큰 전공을 세웠지요. "홍건적"을 상대로 싸우니 이 부대명도 괜찮을것 같은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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