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H】Episode. 주 나하 수군 무관실장 - 쪼가리 하나 ♧:1920'S(소설):♣

1. 이 소설은 고증 개무시, 막가파적 구성을 가진 대체역사라 부르기도 뭣하고 판타지라 부르기도 뭣한 그냥 잡설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2. 거기다가 군대에서 구상한거라 정말 대중이 없습니다.

3. 쪼가리입니다.

4. 그래도 에러는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지 말입니다.


Library of Highness


쪼가리: 어느 날의 제대도서관



점심은 못 먹었다. 복귀 기념으로 인사 하러는 많이 돌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커피나 잔뜩 얻어마셨을 뿐. 점심이나 얻어먹을까 하고 시간 맞춰 찾아간 흑룡회 사무실은 다들 어디 간 것인지 문이 잠겼다. 이런 째째한 영감탱이들.

금방 준비해서 올게요.”

강현의 말을 듣자마자, 유이는 그 말만 남긴 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릴 새도 없었다. 영사관에 들어가면 먹다 남은 밥이라도 있을 테건만.

참령께선 확실히 먹을 복은 대단하군요. , 이젠 정령이시죠. 실례.”

건너편에 앉은 헤이치로가 빙긋 웃었다. 강현도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도 방학 중의 도서관에 손님은 헤이치로 뿐. 그가 앉은 자리의 왼쪽에는 역시나 엄청난 양의 류큐 고문헌과 각종 논문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타치바나 씨는 식사 하셨습니까?”

, 아무로 씨와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얼마나 간단하게 드셨길래?”

간단하게라는 것은 말 그대로의 간단이렷다. 언젠가 한 번, 강현은 아침도 안 먹은 상태에서 간단히 해결합시다.’라는 헤이치로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가 고작 병아리 오줌보만한 우치나소바로 점심을 때운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 물론 그 날 저녁식사는 안남미로 지은 밥과 간장이었지만. 오늘은 과연 얼마나 간단히 때운 걸까.

쥬시를 만들어 주셔서 먹었죠.”

.”

좋다 말았다. 강현은 저절로 혀를 끌끌 찼다. 유이의 쥬시는 나하에 돌아온다면 꼭 한 번은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었건만. 오늘 놓쳤다면 또 언제쯤 되어야 먹어 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혼자 벌어서 고향에 돈도 보내고 카스카의 학비도 내야 하는 유이에게 함부로 음식을 해 달라고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이 안 만들었으니까, 새로 만들어서 올지도 모르겠군요.”

오호.”

표정 관리를 해야지. 이젠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지유랑 둘이서 사니까 저녁밥을 텐코츠로 때울 일도 없을 거란 말이다. 강현은 찢어지려는 볼을 두 손으로 문질러 간신히 표정을 잡았다. 안 되겠다, 뭐라도 집중을 좀 해야겠다. 책상에 잔뜩 어질러진 책과 자료들 중에서 신문 기사를 오려낸 자료를 집어 들었다. 메이지44(1911) 45류큐신보의 사설이었다.

河上助教授南島人して忠君愛国けたるとさらにユダヤインドの亡国民評下したるは南島人面上三斗いたも同然てならん

(카와카미 조교수가 우리 남도인들을 가리켜 충군애국 사상이 대단히 결여되어 있다느니 운운하면서 또한 유대, 인도의 망국민들과 비교하며 평가를 내린 것은 남도인들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뭐야?”

다시 날짜를 확인한다. 메이지 44. 류큐에 경찰도 없이 헌병이 경찰 업무를 맡던 시절이다. 아니, 그보다도 문제가 된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다. 카와카미 조교수라고 한다. 사설을 좀 더 꼼꼼히 읽어보니 쿄토제국대학의 카와카미 하지메 교수다.

이 양반이 충군애국이 어쩌고?”

강현도 나름 대학물을 먹어 본 처지라 이 이름을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카와카미 하지메라면 일본 맑스주의 연구의 선두주자 아닌가. 게다가 재작년에는 그의 논문을 실으려던 잡지가 발매금지 처분을 받아 한국에서는 일본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조롱하는 사례로 한동안 떠들썩하게 언급되기도 했었다. 한국이라고 그닥 관대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이 남도인들은 충군애국 사상이 부족하다며 기염을 토했다니, 상상이 안 가는 노릇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표정이 꽤나 심각했던 것인지, 곧 건너편에서 헤이치로가 물어왔다. 별 일 아니라고 넘길까 생각하던 강현은 곧 생각을 바꿨다. 요새 영사관에서도 박화원이 카와카미 교수의 글들을 틈틈이 읽고 있으니 이참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정도 알아가도 나쁘지는 않을 테다.

이 사설 말입니다. 카와카미 하지메 교수가 충군애국 사상이 어쩌고 했다는데, 이게 뭔 이야기죠?”

, 그거 말입니까.”

씨익 웃은 헤이치로는 곧 신문 스크랩 자료들 중에서 한 장을 꺼내 강현에게 내밀었다. 신문은 아니고 메모인 것 같았다.

琉球観察するに琉球言語風俗習慣信仰思想そのあらゆるにおいて内地とその歴史にするがごとししてあるいは琉球人って忠君愛国思想しというれどもこれはしてずべきにあらずはこれなるって琉球人期待するところ多大なると同時にまた興味多ずるものなり。」

(제가 류큐를 관찰해보니 류큐는 언어, 풍속, 습관, 신앙, 사상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내지와 역사를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류큐인들은 충군애국 사상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한탄할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것으로 인해, 오히려 류큐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동시에 매우 큰 관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어서 헤이치로가 한 장의 메모를 더 내밀었다.

今日のごとく世界において国家心なる日本一部国家心多少薄弱なる地方するは興味あることに如何となれば過去歴史についてるに時代支配する偉人国家的結合薄弱なるところよりずるのにてキリストのユダヤにける釈迦印度けるいずれも亡国したる千古偉人にあらずや。」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국가심이 강하게 발현되는 일본의 일부분으로 있으면서도, ‘국가심이 다소 박약한 지방이 존재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에 속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시대를 지배하는 위인들은 국가적 결합이 박약한 곳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자면 유대에서의 예수와 인도에서의 부처는 모두 망국에서 태어난 천고의 위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와…….”

류큐신보는 지금은 비록 민영신문으로 발간되지만 초창기에는 류큐총독부의 기관지로 시작되었다. 당연히 충군애국사상의 부족 운운이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식민지 류큐에서 한 시대를 풍미할 위인이 태어난다니. 설령 카와카미 교수가 말 하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해도 좋은 소리 나올 리가 없는 노릇이다.

이 메모를 히라타에게 보여주면 무슨 반응이 나올까.

지금 연구하는 거랑 이건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지인 화족이며 총독부 학무국장인 타치바나 오오타로의 조카다. 그런 청년이 류큐인 사서의 도움을 받아가며 류큐 역사자료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이런 자료를 스크랩해 가지고 있으니 강현으로써는 그닥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고 있었다.

……. 좀 부끄럽긴 한데 말이죠.”

강현이 질문하는 중에도 여전히 종이 위에 뭔가를 적어가던 헤이치로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펜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었다. 다시 종이더미를 뒤적여 그가 내민 것은 한 권의 얇은 공책이었다.

정령께서 읽어 봐 주시겠습니까?”

헤이치로의 얼굴에 꽤나 씁쓸한 미소가 퍼져 있다. 말없이 공책을 받아든 강현은 조심스럽게 첫 장을 펼쳤다. 나하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 타치바나 헤이치로. 본문은 역시 둘째 장부터인 법이다. 논문 초고라도 보여주는 것인가 싶었지만, 생각 외로 공책들은 에세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강현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글이 있었다. 마침 헤이치로는 이 장에 책갈피를 하나 끼워 놓았다.

제목은 아마미 지역의 행정구역 귀속에 관한 소고’.

최근 불거진 아마미 지역의 귀속권에 대하여, 이를 행정학, 법학, 역사학, 인류학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보이고 있다. 특히, 한 지역 주민들의 일체감과 귀속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학, 인류학계에서 활발한 의견개진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표된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활발한 토론으로 이어지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마미의 역사적 경위를 설명하면서 끝에 가서는 다소 무리하다 싶은 정도의 논리로써 아마미의 카고시마현 귀속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노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마미를 류큐에 집어넣는 것이 타당하다, 이 말인가.

결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강현의 질문에, 헤이치로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소리를 하시는구만.”

1872년까지는 쇼()씨 왕조의 통치력이 완벽하게 미쳤으며, 1879년에 가서야 카코시마현 관할로 편입된 아마미를 그로부터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제국의 영역으로 편입된 류큐와 별개로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이 헤이치로의 주된 논지였다. 그럼 아마미의 카고시마 귀속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16년이란 시간을 엄청난 비중으로 평가하는 것일까.

한국에선 통합한 지 50년 지났어도 남남으로 지내는 동네도 있는데, 참 속 편한 소리군요.”

하하, 역시 정령이라면 그런 말씀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것보다도, 설마 이걸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한 겁니까?”

설마 총독부 국장인 숙부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지는 않았겠지. 학교 내에서도 유이라면 모를까 일본인 교수나 학생들에게 보여줬다가는 단박에 숙부인 타치바나 자작의 귀에 소식이 들어갈 테다.

아사히신문에 게재하려 했었죠.”

…….”

그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중앙지에서 받아주질 않으니까, 하다못해 지역지나 잡지나 학보에라도 내보려고 여러 곳 시도했는데……. 결국엔 숙부께 혼만 잔뜩 나고 말았습니다.”

이거 봐, 이거 보라고! 박 서기, 나한테 생각 좀 하고 움직이라고 했던가요? 여기 진짜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 있잖아! 강현은 당장이라도 영사관으로 뛰어 들어가 박화원을 붙잡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수군 제독의 아들이 조일전쟁, 한일전쟁의 한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한일관계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그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강현은 시흥 촌구석에서 농사지어 먹고 살던 조상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인이 왜 이렇게 류큐 편을 드는 겁니까? 이하 선생님이라면 원래 남도인이라고 해도.”

류큐중앙도서관장인 이하 후유(伊波普猷)와는 일면식도 없는 강현이지만, 어쩌다가 그를 지칭할 때는 언제나 선생님이라는 경칭을 붙였다. 처음 나하 부임이 결정되었을 때, 류큐 관련 서적이 얼마 없는 한국에서, 이하의 명저 '고류큐'가 왕립도서관 열람실의 일본사분류 한 구석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는 소리까지 질렀던 경력도 있다.

그러나 고류큐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그조차도 결국은 류큐사를 일본사 내의 이공간으로 규정하며, "류큐를 연구함으로써 일본제국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역설하는 타협을 택하고 말았다. 류큐인인 이하 후유가 그럴진대, 화족 집안의 청년이 이 정도로 과격한 논지를 내비친다는 것은 강현으로써는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류큐 편이라…….”

헤이치로 역시 쉽게 답을 해 주기 힘든지, 한동안 턱을 괸 채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이윽고 강현의 배에서 우렁찬 꼬르륵소리가 들리자, 헤이치로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연필을 들어 손에서 빙글 굴렸다.

정령, 이런 예는 어떨까요. ‘분로쿠게이쵸의 역은 당대 일본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원정을 비난하는 것은 감정에 치우친 무리한 평가다.’”

어떤 놈이 배때지 갈라질라고 그딴 개소리를…….”

헤이치로가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명색이 수군 무관인 강현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한국어로 중얼거렸으니 어떻게든 일본어로 순화된 표현을 만들어 낼 여유는 있었다.

제가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일본 편을 드는 것이겠죠? 일본 내부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한국에게 인명, 재산, 모든 부분에 걸쳐서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까지만 간다면 어떨까요? 물론 논란의 여지가 더 있기는 하겠지만, 이 조차 일본의 편을 드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여기서 뭔가 평을 덧붙인다면 험한 말이 안 나올 수는 없을 테다.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강현의 입장에서 순화했다고 생각하는 말들도 일본인들은 어쩜 그렇게 과격하냐며 혀를 차는 판이다.

이건 어떻겠습니까? ‘17세기 한국 정부에 복속된 이후의 이어사, 주호사는 분명 한국사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그 이전 이어사와 주호사는 엄연히 한국사와는 별개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어와 주호에서 한국 본토의 주민들과 국가정체성 면에서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어쩐지, 앞에서 읽었던 카와카미 하지메의 발언과 묘하게 겹치는 말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이 말을 처음 들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수군에서 그런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역시 한국이군요. 그 강연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어대 교수였는데, 그 후로도 한 두어 번 강연 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지요.”

그런 겁니다.”

헤이치로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께서는 그 발언이 이어나 주호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구 편을 든다고 할 게 있을까요? 서로 다른 나라로 출발했던 건 사실이고, 그래서 재미있는 것도 많고. 솔직히 제주만 해도 본토와 다른 나라라고 하는 판인데요. 게다가 500년을 같은 나라로 살아온 게 갑자기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이어대학 교수가 앞서 말 한 내용의 발언을 한 이유는 결코 이어, 주호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 일본보다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고 하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과격분자의 증표나 마찬가지인 행동이다. 그 교수는 본토와는 다른 이러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대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고 이끌어갈 수 있을지 큰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덧붙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하 후유의 발언과 비슷하다.

그게 바로 자신감이지요.”

헤이치로가 빙긋 웃는다.

아까 보셨던 카와카미 선생님의 글이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류큐가 일본과는 다른 나라로 살아왔던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류큐가 일본과 한 나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사실이죠. 한 가지를 인정한다고 해서 다른 한 가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류큐가 일본의 일부라면, 일본은 그 류큐를 제대로 인정을 해 줘야죠. 일본에 돈을 갚지 못해서 아마미를 뺏어갔으면, 이제 류큐가 일본 안에 들어왔는데 굳이 아마미를 내지에서 움켜쥐고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그 주민들의 의향이 어떤지가 크게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 점에서 저는 한국이 부럽습니다. ‘다르다는 말을 해군 부대에서 대놓고 할 수 있으니까요.”

헤이치로는 다시 안경을 끼고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한 모금을 홀짝이며 들이키자마자 다시 잔을 내려놓은 것을 보니 식어서 맛이 달아나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글만 계속 써서는 먹고 살기 힘들 텐데요.”

강현이 펼쳐서 내려놓은 부분은 흔히 미나모토노 타메토모(源爲朝) 설화로 대표되는 일류동조론을 비판한 글이었다. 일본인이면서 일류동조론을 - 비록 개인 공간에서나마 - 비판하다니, 이 정도면 보통의 강단이 아니다.

류큐학의 대부인 이하 후유는 그나마 류큐인 지인들의 도움이 있으니 지금도 류큐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사정이 다르다. 가족과 일가친척들도, 그 친구들도, 모두 야마톤츄, 일본 내지인들이다. 그러면서 류큐 연구를 하고, 류큐인들과 몰려다니고, 류큐인 아가씨를 짝사랑한다.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고향에 보내고 지독한 굶주림과 특임들에 대한 차별을 견디며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복을 걸쳐왔던 강현으로써는, 스스로 가난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단절을 감수하며 신념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초인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자작 숙부를 두고 역시 텐코츠만 먹으며 버티는 눈앞의 이 청년은 바로 그 초인이란 말인가.

사실 유혹이야 계속되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일류동조, 내구일체를 주장하는 글 한 편만 써 내면 밥 먹을 원고료는 들어올 겁니다. 논문 써 내면 당장이라도 총독부 밥 먹겠죠. 한 번은, 직접 쓸 필요 없으니까 이름만 달아서 내라고 까지 하더군요.”

그거 참 편하네요. 왜 안 하십니까?”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는 않지요.”

또 그 소리냐. 강현으로써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소리였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일본인 지인들 중에서 가장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때처럼 영양실조 걸려봐야 정신을 차린다느니 하면서 비아냥거릴 수도 없었다.

전 역사를 공부하지, 소설을 공부하진 않았습니다. 한두 번 논문의 탈을 쓴 소설을 써 낼 수는 있겠지요. 그 이후로는 힘듭니다.”

대필 해준다면서요?”

그렇게 먹고 살 거라면 죽는 게 차라리 깔끔하죠. 그리고…….”

다시, 헤이치로가 안경을 벗는다. 안경다리를 접지 않고 두 손으로 잡은 채, 안경알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지막 이유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미래가 아닐까.

그랬다간 아무로 씨를 볼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강현도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두 손으로 입 주변을 감쌌다.

그렇군요.”

누군가를,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라도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이 좁은 도시에서,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를 빤히 알면서도 차마 볼 수 없게 된다면야.

실례 되는 소리를 많이 했군요.”

아니, 괜찮습니다. 덕분에 속이 시원하네요. 한동안 이것저것 쌓여서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헤이치로는 다시 안경을 쓰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그와 함께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또 다른 이용자가 나타날 리는 없겠지.

정령님, 쥬시 만들어 왔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문을 열고 나타난 유이의 손 위에는 붉게 물든 밥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 자체가 서운하다.

이거 먹으려고 돌아왔어요.”

강현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받아들었다. 유이가 막 닫은 문을 다시 열고 밖으로 나선다. 뒤에서 유이가 어디 가시게요?”라며 묻는다.

자료실에 음식 냄새 풍기면 안 된다면서요. 영사관에서 먹고 돌려줄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잘 먹을게요.”

아쉬워하는 유이를 달래 헤이치로의 옆으로 돌려보내면서, 강현은 고개를 돌려 인사하는 헤이치로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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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카미 하지메 설화사건은 집에 있는 책 보면 금방 나오는건데 연구실에서 인터넷 자료 찾아가며 쓰려니 머리가 핑핑 돌겠군요. -_-;;


덧글

  • Allenait 2012/01/02 00:30 # 답글

    붉게 만든 밥이라면.. 뭘로 물들인 건가요?
  • 천지화랑 2012/01/02 10:37 #

    그냥 볶음밥입니다. -_-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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