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H】Episode S. 전투수영 - Prologue ♧:1920'S(소설):♣

1. 이 소설은 고증 개무시, 막가파적 구성을 가진 대체역사라 부르기도 뭣하고 판타지라 부르기도 뭣한 그냥 잡설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2. 거기다가 군대에서 구상한거라 정말 대중이 없습니다.

3. 쪼가리입니다.

4. 그래도 에러는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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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y of Highness


Episode S. 전투수영




Prologue.



이런 날에는 계곡에 가서 발이라도 담그며 놀고 싶다. 아니, 탁족(濯足)은 서당 훈장님들이나 할, 여자애들도 안 할 감질맛 나는 짓거리니 계곡이든 바다든 물속에 한 번 온 몸을 푹 담그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듯싶다.

"후우, 이건 찜통이 따로 없네. 제길."

"방금 얼음식혜 먹었잖아."

"이게 얼음식혜로 해결 될 더위니."

축 늘어지는 말투로 대답을 하면서, 강현은 부채를 잠시 내려놓고 왼팔을 두어 번 빙글빙글 돌렸다. 점심 먹고 나서 성지유가 잠시 떠 온 식혜를 먹은 뒤로 30분이 넘게 부채질만 하고 있었으니, 아무리 어부 출신인 강현이라 해도 팔이 안 아프면 인간이라 부르기도 힘들 것이다.

사실 기온만 가지고 보면 나하가 그리 더운 도시는 아니었다. 나하의 7월 평균기온은 28도, 대정의 7월 평균기온이 26.5도라던가. 지금 기온은 30.6도, 이 시기면 대정 기온도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경성 기온도 27도 넘는다. 하지만 문제는 습도였다. 상대습도가 73%나 되었다. 원남해보다야 낫다고는 하지만, 시흥 촌구석 출신인 강현으로써는 산소가 아니라 수소를 들이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판이었다.

다른 방들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근무 중이지만, 무관실은 영사관 내의 유일한 군사보안구역이니 함부로 문을 열어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강현 혼자 있던 시절엔 정말 더우면 아예 러닝셔츠까지 벗어놓고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동생이라 해도 아가씨가 있는 판에 그럴 수는 없었다. 연회색 근무복 셔츠를 벗어놓고 군청색 러닝셔츠만 입은 채 부채를 부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여긴 그나마 낫잖아. 이 정도로 있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야."

"그건 그렇지."

성지유의 말에,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강현이 씨익 웃어보였다. 남군들끼리만 있으면 러닝셔츠만 입고 근무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여군 한 명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 여군이 '아줌마'가 아닌 이상엔 꼼짝없이 웃옷 차려입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금처럼 남군과 여군이 한 방에서 함께 러닝셔츠만 입고 근무한다는 건 꿈도 못 꿀 노릇이다. 남매가 함께 근무한다는 건 이럴 때 편했다. 언젠가 국방부 인사관리과 사람들을 만나면 고기라도 한 번 먹여야 할까 싶었다.

"그 브래지어, 괜찮아?"

"응! 아주 편해."

다른 여자들이 그랬듯 이전까지 가슴 부분에 붕대를 두르고 다녔던 성지유는 강현이 사 준 브래지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 팔을 휘휘 들어 올려 보였다. 파리에서 물건을 살 때 박화원이 있지 않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웬 해적두목같이 생긴 동양인 청년이 여자 속옷가게를 기웃거린다는 소문이 쫙 퍼진 파리 시내를 생각하니 잠깐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저나, 오늘은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을라나?"

"분위기 봐서는 그럴 것 같은데. 솔직히 목요일 오후는 왠지 다들 기운이 없다고나 할까."

자리에서 일어난 성지유는 자신의 책상위에 있는 하이비스커스 화분을 들어 창가에 올려놓았다. 삐딱한 자세로 태평양 섬이 아니고는 구경하기 힘든 특유의 붉은 꽃잎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강현은 다시 부채를 들어 손목운동을 시작했다. 팔뚝 근육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손목만이 90도로 회전하는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따분하다.

더워 미치겠다.

미친 듯이 매달릴 일도 없다.

히라타와 으르렁 댈 일도 없다.

예전 같으면 밥이나 얻어먹자고 흑룡회니 재향군인회니 얼굴 비춰주러 다녔겠지만, 이젠 밥걱정도 없고 그 재수 없는 인간들 낯짝 두 번 봤다간 먹은 밥도 넘어올 것 같았다.

박화원이 이런저런 트집거리로 잔소리 안 하는 거 보면 말 다 한 노릇이다. 아니, 이건 성지유와 함께 지내게 된 이후로 트집 잡힐 일이 거의 없어졌나. 옷도 밥도 성지유가 챙겨주고 있으니. 대신 성지유에게 잔소리 듣고 있지만.

도서관에 가면 유이와 헤이치로가 한동안 못 봤다며 반가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귀여운 여동생 놔두고 혼자만 도서관에 놀러가자니 양심에 찔렸다. 아니, 그 전에 와이셔츠 다시 입기가 싫다.

책이나 읽어볼까.

"지유야, 뭐 재밌는 책 있을까?"

"글쎄. 오빠가 좋아할 만한 책이 뭐 있을까."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이 뭔데?"

"오빠가 애잔한 연애소설 같은 거 읽고 눈물 뚝뚝 흘리면 이상하잖아."

"이상하냐?"

확실히, 지금까지 엄밀한 의미에서의 '연애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임무와 관계가 없으면 소설도 잘 안 읽는 판이다.

"오빠도 이제 슬슬 장가도 들어야 하잖아? 나야 둘째 치고, 기현이나 미현이도 이제 오빠가 뒷바라지 할 나이는 아니니까."

"그거 참 미안하구나."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께 미안해해야지!"

"큭!"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집에 갔을 때 집안 어른들이 장남인데 결혼 해야지 손주 봐야지 하는 말씀 안 하셔서 방심하고 있었더니만, 막상 자신이 없을 땐 성지유를 붙들고 손자며느리, 증손자 타령을 하는 모양이었다.

"소야 이야기 했는데도 그러셔?"

"글쎄, 그러고 보니까 소야 있다는 거 알고 나선 별 말씀 안 하셨던가? 아니, 그보다 오빠가 계속 집에 있었잖아."

고개를 까딱거린 강현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연세 든 어르신들이 증손자 증손녀 한 번 안아보자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옛날 어르신들이라고 증손자 낳으라고 성화라도 하면 그 땐 골치 아파진다. 한국에서 아들 둘 낳으면 군 전체에 소문이 나고 신문에까지 실리게 된 지는 어언 400년에 이른단 말이다. 그래서 창현이가 태어날 때 시흥군수에 경기도지사까지 직접 집에 찾아왔다고도 하지만.

-똑똑똑!

"누구세요?"

"이치로입니다."

"응, 나갈게!"

성지유가 책상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강현도 삐딱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치 녀석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십중팔구 소포가 온 것이었다.

-우, 우와아아아악! 참령님 으아아아악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뭐야? 이치, 뭔 일이냐?

-으아아악! 성 참령, 나 암 것도 못 봤어!

"으휴."

밖에서 뭔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자, 강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비벼댔다. 한창 나이인 18살의 소년 앞에 스물셋 처녀가 속옷 차림으로 나타난다면 쌍코피 터뜨리며 혼절하지 않는 게 용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생애 최악의 경험을 하고 땀내 비린내 풀풀 나는 해적들과 부대껴 살아온 저 아이에게 그런 걸 백날 말해줘 봐야 뭔가 개선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였다. 그걸 안다면 12전단 남군 간부들이 성지유만 보면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먼 바다만 쳐다보는 일은 없을 테니.

이래서는 자신이 아니라 성지유를 누가 데려갈지 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 혹시 박화원이 올라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려나.

"뭐 왔어?"

"이거."

성지유가 두 손으로 양 끝을 잡고 내보인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고풍스러운 자개 장식이 돋보이는 칠기 명령서함이었다. 고개를 흔든 강현은 책상 맨 밑 서랍을 열고 서랍 문 밑으로 손을 가져가 톱니바퀴 네 개를 슥슥 돌렸다. 오로지 손가락 감촉만으로 점자 숫자의 조합을 맞춰낸 뒤, 서랍 문을 위로 들어올렸다. 맨 밑 서랍 바닥의 숨겨진 공간에서 막대기를 꺼내는 동안, 성지유는 막 배달된 명령서함을 강현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오빠가 작업하는 모양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편지 꺼내봐."

"응."

성지유가 지칼을 꺼내 '경성도부 중구 궁남동 15-2 이하리'의 이름으로 명령서와 함께 온 편지봉투를 개봉하는 동안, 강현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생각해보면 나하에 복귀한 후 처음, 무려 3년 만에 다시 펼쳐보는 암호막대였다.

"이거."

"대체 이런 악필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단 말야."

어쩌면 이 글씨 자체가 암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오는 편지지를 한 번 슥 훑어본 강현은 능숙한 솜씨로 편지지를 대각선으로 접어 띠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용이야 안 봐도 오늘도 당신을 보고 싶어 배게 속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어쩌구 하는 낯간지러운 연애편지일 테니 읽을 시간에 암호나 푸는 게 훨씬 생산적이었다. 그런데 그 연애편지 내용이 매번 조금씩 바뀌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막대 잡아봐."

"응."

대각선 띠를 완성한 강현은 성지유가 양 끝을 잡은 암호막대에 띠를 둘둘 말기 시작했다. 띠가 말리면서, 오로지 숫자만으로 채워진 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띠를 모두 만 후, 강현은 막대에 말려 나타나는 글자무더기가 총 몇 행인지를 세기 시작했다.

"18의 2/5면 얼마지?"

"3.6에 2니까, 7.2."

"그럼 8."

숫자만 빼곡한 열에 손가락을 낸 강현은 9번째 행부터 숫자를 읽어나갔다. 다음은 명령서함의 톱니바퀴를 돌려 숫자를 맞춰야 했다. 만일 숫자 조합이 틀린 상태에서 단추를 누르거나 강제로 개봉하려 했다간 석유가 흘러나오고 불꽃이 터져 바로 잿더미가 되는 무지막지한 장치다. 숫자를 맞춘 뒤, 강현은 성지유에게 조합을 보여주었다. 막대와 장치를 번갈아 살피던 성지유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다."

"응."

성지유는 막대를 내려놓은 채 오른팔로 책상을 짚고 허리를 한껏 숙여 명령서함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개봉에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미 예전에 교육을 받았으니 가까이 다가가진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석면 방화장갑을 낀 강현의 엄지손가락이, 조심스럽게 톱니바퀴 옆의 단추를 눌렀다.

-딸칵!

"휴우."

벌써 수십 번째 하는 일이지만, 매번 입 안이 바싹 말라붙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얼른 방화장갑을 벗어 서랍에 집어넣은 강현이 명령서를 꺼냈다. 성지유는 그 사이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세절기에 집어넣고 레버를 빙글빙글 돌렸다. 칼날에 종이가 채 썰리는 소리가 좁은 무관실에 울려 퍼졌다.

"무슨 명령서야?"

"에에……."

성지유의 질문에,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통한 대답을 해주지 않고 있었다. 성지유가 손을 뻗자, 강현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명령서를 건네주었다.


발신: 수군참모총장

수신: 국방부 정책실 대외정책관 7227실장

참조: 외무부 주 나하 총영사

구분: 일반


제목: 광정16년 하계 전투수영훈련 지시


1. 광정16년(단기4257/서기1924) 하계 전투수영

 훈련을 다음과 같이 지시함.

 가. 일시: 광정16년(단기4257/서기1924)

              8월 23~24일(2일간)

 나. 장소: 나하시 나미노우에(波の上) 해변.

 다. 참가인원: 예하 전 대원.


2. 결과 보고

 가. 기한: 광정16년 8월 26일자 소인 우편.

 나. 증명용 사진 1매 동봉.

  . 끝.



대외비도 아니고 고작 일반 문서를 귀찮게 비밀명령서함에 집어넣고 보내다니, 국방부의 담당관도 꽤나 할 짓 없어 심심한 모양이었다. 강현 자신이 담당관 자리에 앉아 있다면 저런 낯 뜨거운 연애편지 암호문을 팔 아프게 쓸 시간에 낯잠이라도 한 숨 자지 않았을까.

"전투수영?"

공문을 다 읽은 성지유가 맨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렇다네."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여기서도 그런 걸 해?"

"나 때도 한 번도 안 했어. 바다에 간 적도 없고."

바다에 간 적이 없었다.

바다에 놀러 간 적이 없었다.

그렇네.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바다에 나가보고 싶다고 툴툴댄 주제에, 정작 한여름에 바닷가에 놀러 가 본 적이 없었다니.

"한 번도 안 가봤어?"

"응."

놀러 갈 일이 없었다.

시간은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없었을까.

"화원 언니라든가 데려가면 되잖아?"

"야, 야. 끔찍한 소리 마라. 저 아가씨를 어딜 놀러 데리고 다녀. 괜히 같이 나갔다가 또 무슨 잔소리를 들으려고."

"오빤 왜 그렇게 화원 언니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어? 한국에선 꽤 사이좋게 지내놓고는."

"몰라, 됐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은 동생에게, 강현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착각이다. 사이가 좋다니, 그건 그저 대한국에서 오로지 두 사람만이 근 1년간 같은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에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것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진다는 것은 그 정도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라면 더더욱.

이 이상은 곤란하지 않을까.

"그럼 우리 둘이서만 가자고?"

"뭐, 그래야지. 여기에 우리 둘 밖에 더 있어?"

"재미없어."

"재미없는 오빠라 미안하구나."

책상 위에 걸터앉은 성지유는 토라지기라도 한 것인지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강현은 그런 그녀를 애써 무시하며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수군본부에서 작성한 '대전쟁 수전사'의 원고를 쭉 읽기 시작했다. 완본이 나오면 이미 나하에 있을 거라며 김동우 교수가 미리 챙겨준 원고 복사본이었다. 살면서 무려 책의 원고를 감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라,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었지만 간단한 인문서적도 아니고 수군 도서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았다.

벌써 유럽에서의 개전 과정과 육상전의 개황을 모두 읽고, 이어 아시아에서의 개전 과정을 읽으려던 찰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지유는 옆을 보이고 의자에 앉은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서랍에서 다트핀을 꺼내 다트판(?)을 향해 휙휙 던진다. 성의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손놀림에 날아간 다트핀은 던지는 족족 3배판을 맞추더니, 급기야는 30점판을 연달아 맞췄다.

저 다트핀을 쥔 채 이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는 게 참 다행이었다.

"너, 정말 그러고 있을 거야?"

"심심해."

"으휴."

사실 결과 보고하는 거야 쉽다. 사진 동봉하라는 요구만 없다면. 그리고 투정부리며 파업(!)에 돌입한 부하를 처리하는 것도 쉽다. 까짓 거 본국에 보고해서 갈아치우면 그만이니까. 그 부하가 일 잘하기로 소문 난 귀여운 여동생이 아니라면.

무슨 생각인건지.

"전투수영에 민간인 끌어들여서 뭐 할 건데. 게다가 여긴 나도 나하에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바닷가라고."

벽에 걸린 나하 전도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영사관이 있는 우에노야(上之屋)에서 시작해 나하 인근의 바닷가를 쭉 훑어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나미노우에라는 해수욕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다른 사람 데려가야지. 우리 둘만 갔다가 길 잃고 헤매려고?"

"오빠 못 믿냐?"

"만약에."

왠지 길게 말을 해봐야 별로 얻을 게 없을 듯싶었다. 자신이 없었던 1년 반 동안 친자매마냥 친하게 지냈다는 영사관의 두 아가씨가 의기투합해 자신에게 무한 공격을 펼치는 모습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성지유의 성격으로 봐선 자신이 막는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을 안 할 성미도 아니다. 핏줄 이어진 동생도 아니면서 이런 것만 어떻게 자신을 쏙 빼닮았는지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알았어. 그럼 박 서기도 같이 가면 되는거지?"

"뭐, 그렇지."

자신과 거의 비슷하게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이 아이에게서 당장이라도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들어 두 손을 잡고 "정말? 정말 그래도 돼?"라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까딱하다간 강현 자신이 시무룩해질 뻔했다.

"대신에, 박 서기가 나한테 잔소리 못하게 네가 중재 잘 해줘야 해."

"응, 알았어!"

그제야 성지유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여동생 겸 부하의 떼에 못 이겨 덜컥 허락하고 만 자신도 참 실없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읽던 원고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성지유는 또 어딜 갈 생각인지 연회색 근무복 셔츠를 챙겨 입고 리본까지 매었다.

"어디 갈 건데?"

"은행에서 돈 좀 뽑아올게."

"돈은 갑자기 왜?"

"오늘 장 봐야지. 월급 들어왔을 텐데. 방값도 내야하고."

"참, 그렇지."

참령 시절에는 툭하면 월세를 밀려 집주인 아주머니의 속을 긁었던 강현이다. 이제 돈 버는 사람도 둘이나 있고 월급도 올랐다. 정령 계급으로 돌아왔으면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얼른 갔다 와."

"응!"

통장과 도장을 챙겨 든 성지유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더니 무관실 문을 열고 나갔다. 구두 바닥이 나무 계단을 밟는 가벼운 소리가 들릴락 말락 했다. 현관을 나선 성지유가 수위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깡총깡총 뛰어 나하제국대학교 후문 앞 도로를 건너 달렸다. 고작 자신의 말 한 마디에 금세 분위기가 바뀐 성지유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강현은 갑자기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침에 면도해서 까실까실한 수염을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빠르게 훑었다.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빨라진다.

"수영복이 있던가?"

돈 뽑으면 그것부터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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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이거나 연재해야겠습니다. -ㅁ-;;


덧글

  • sephia 2009/09/20 23:09 # 삭제 답글

    저.... 전투수영!!!! ㄱ-
  • 천지화랑 2009/09/20 23:12 #

    끼야하아~!

    정작 전 한 번도 못 갔습니다. -_-;;
  • 르-미르 2009/09/21 11:23 # 답글

    이치로라는 아이, 참 호강했군요(...!)
  • 천지화랑 2009/09/21 18:33 #

    뭐 그럴지도요. 식민지인 소년이 이 이상의 호강이라면....

    아직 남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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