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란 무엇인가 ☆:걍 끄적끄적:★

우리 아버지께서는 80년에 대학 새내기 신분으로 나름 민주화운동 하셨던 분이지만, 5.17 직전에 운동권의 분열과 좌파의 모순에 회의를 느끼고 운동 접고 군대 가신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있으시죠.

그런데 어제, 저랑 저녁을 드시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에이 씨, 역시 정권 바뀌면 안 되겠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깜짝 놀란 제가 "아니, 왜요?"라고 여쭤봤더니, 대충 이야기가 이렇더군요.


참고로, 아버지께서는 유기농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업체에서 일하십니다.
부친: 이놈의 정권이 말야, 정권 하나 바뀌니깐 아주 그냥 법을 죄다 뜯어고치려고 작당을 하고 있어.

천지:
무슨 법인데요?

부친: 영농육성법인데(이건 정확히 이름이 기억 안 납니다. 애초에 제 관심분야도 아니라서;;;;)

천지: 뭐가 어떻게 바뀌는데?

부친: 그거야 한두가지가 아닌데 어떻게 다 말을 해 주겠냐. 하여간에 정권 한 번 바뀌니깐, 아주 그냥 농림부 장관부터 시작해서 진흥청이고 어디고 과장에 말단 실무자들까지 싹 다 갈아치워놓고는 한 달 만에 법 바꾸려고 후다닥 하고 있단 말야.

천지: 어느 선까지 갈아치웠는데요?

부친: 아, 주사까지 갈았다니까.(아실만한 분들은 '주사'가 어느정도 위치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천지: ....

부친: 그렇게 말야, 과장이야 그렇다 치고, 애초에 실무자인 주사까지 다 갈아버렸으니까, 이 양반들 각자 자리에 와선 반년, 1년도 안 되어가지고 아직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판국에 위에선 그냥 법을 이래이래 바꿀 건데 이의 있으면 제기해라 하고 턱 하고 던져버린단 말야. 그러면 아직 업무 파악도 안 된 애들이 뭘 알아.

천지: 그죠. 뭘 알아야 반론이든 뭐든 하지.

부친: 그래가지고 반론이 아예 없으면 또 그러니까, 아주 지엽적인 거, 그런것만 가지고 반론이라고 달아서 올려보내면, 결국엔 그냥 애초에 원안대로 그냥 쭉 내려온단 말야. 일반 회사에서 말이다, 보통 한 3년 근무를 하면 '대리'를 달아줘. '대리'라는 게 어떤 의미냐 하면, 일반 평사원은 이거를 이렇게 해라, 저걸 저렇게 해라 일일이 설명을 해 줘서 일을 시켜야 하는 게 평사원이고, 3년 정도 일을 하면 그 일이 완벽하게 파악이 되어서, 이젠 이 일 좀 해라, 하고 던져주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돼. 그게 '대리'라는 거야. 근데 이건 뭐 3년은커녕 주사까지 싹 다 갈아치워서 아무도 일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데 뭔 말을 하겠냐.

천지: ....

부친: 그러고선 또 뭐 법령을 통폐합을 하니 어쩌니 하는데, 이것도 사실 알고 보면 그냥 엉터리야. 야, 법이 한 10개가 있었던 걸 3~4개로 줄인다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그 중에서 유사한 조항들은 한 개만 남겨두고, 쓸데없는 건 없애고, 이렇게 해서 3~4개로 줄이면 되는건데, 이걸 그냥 3개 법을 하나로 합치는 식으로 해 버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10개 조항 있는 법 3개를 하나로 통폐합 하면 30개 조항 있는 법 하나가 되어버린단 말야.

천지: 뭠미까 그건 대체;;;;

부친: 하여간에 말야, 이딴 식인데 또 무슨 시청 공무원인지 농민인지가 청와대에 건의 올린게 또 그냥 그대로 반영이 되었나봐.

천지: 참 빠르기도 한 청와대네요. 근데 뭔 건의인데요?

부친: 야, 말이다. 유기농이랑 일반 화학비료농사랑 두 가지 작물이 있으면, 어떤게 더 좋을 것 같냐?

천지: 그야.... 보통 유기농이라고 하지 않아요?

부친: 그래,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게 왜 그러겠냐. 유기농으로 하면 뭔가 좀 엄격한 기준을 거친 퇴비를 사용하고 이런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천지: 그렇죠.

부친: 근데 이놈의 법을 어떻게 고치는가 했더니, 그 유기농에 필요한 각종 자재들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서 산업 발전이 안 된다고, 그걸 좀 풀어주라는 식으로 법을 고치도록 나온거야.

천지: ....

부친: 그러면 말야, 유기농이란 게 애초에 수확량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도 재배가 까다롭고 그래서 믿을만 하다고 사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기준이 약해지면 수확량도 별로고 가격도 비싼데 어느 누가 사 먹겠냐. 근데 이놈의 윗대가리란 것들이 그런 건 하나도 생각 안하고, 공무원이란 것들도 업무 파악조차 안 되어 있으니깐 거기에 반론도 못 하는거야. 그래서 설명회라고 가면 아버지나, 아니면 업계 전문가들이 아니, 그건 이러이러하다 그렇게 가면 안된다 하고 지적을 하면, 또 "아, 그렇겠군요!" 하고선 끝내버리는거야. 그렇다고 진흥청이나 그 윗선에다가 우리같은 민간인들이 설명하도록 해 주는 건 또 지들 자존심이 있으니까 못하고.

천지: 이거 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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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바.

덧글

  • 정호찬 2009/07/03 23:53 # 답글

    근데 요새 지들도 실용정부란 말 안쓰더라?
  • 천지화랑 2009/07/03 23:55 #

    이젠 중도래잖습니까?
  • 운향목 2009/07/03 23:59 # 답글

    그렇군요; 중도정부로군요;
  • 천지화랑 2009/07/03 23:59 #

    ㄲㄲㄲ?
  • 운향목 2009/07/03 23:59 #

    ..리플이 조낸 빠르다!?
  • 천지화랑 2009/07/04 00:00 #

    네이트온에 자동으로 뜹니다?
  • asianote 2009/07/04 00:10 # 삭제 답글

    총체적 무능!!! 그래도 그들에게는 그네히메가 존재한다능...
  • 천지화랑 2009/07/04 00:15 #

    이왕이면 망가질대로 망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_-;;
  • 루치까 2009/07/04 00:26 # 답글

    이건 화살 쏘고 과녁 그리는 격 아닙니까(...).
  • 천지화랑 2009/07/04 00:27 #

    판때기는 80m?
  • 오그드루 자하드 2009/07/04 00:47 # 답글

    왜 주사까지 갈렸는지 짐작가는 데가 있기는 있습니다.
    http://catmon.egloos.com/4945125
  • 천지화랑 2009/07/04 11:38 #

    쩌법....
  • Moonseer 2009/07/04 07:26 # 답글


    흐르느니 눈물 뿐.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고, 정부가 정부답지 않으니 큰일이네요. 참여정부가 과격하다고 욕 들어먹으면서 정책들 추진하던 당시보다 졸속이면 이건 뭘 어쩌란 소리인지.


  • 천지화랑 2009/07/04 11:39 #

    차라리 실용 소리를 말든가 말이죠
  • osado 2009/07/04 07:50 # 답글

    정확하게는 중도실용이란 용어를 쓰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실용하다가 중도에 멈춰버린 느낌이군요...;;;
  • 천지화랑 2009/07/04 11:39 #

    失容인가요
  • 少雪緣 2009/07/04 08:16 # 답글

    반론해도...꼴리는대로 다하는것이 본격 대한민국CEO
  • 천지화랑 2009/07/04 11:39 #

    당장 주주총회에서 퇴출당해야 할 판이죠
  • 지크프리드 2009/07/04 08:31 # 답글

    "그냥 주어가 없는 정부"가 좋을것 같"읍"니다.
  • 천지화랑 2009/07/04 11:39 #

    그럴듯?
  • 안셀 2009/07/04 09:08 # 답글

    오오..규제 폐지 만능주의! (그럴리가)

    후우..부모님 뒷담화하는것 것 같아서 그렇긴 하지만..저희 부모님은 BBK 검사가 청와대에 입성해도, 제 2 롯데월드가 안보에 위협이라고 해도, 이명박의 멜라닌 돌발영상을 봐도 한나라당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 반대 세력에 대한 무한한 증오는 변하질 않습니다--;;
  • 천지화랑 2009/07/04 11:40 #

    그냥 이 나라 떠버리는게 최고 -_-;;
  • 초록불 2009/07/04 10:12 # 답글

    5공 때, 업체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

    박통 때 해먹을 만큼 다 해먹은 세무서 직원이 이제 우리는 살만 하니까 정말 기업을 위해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이 죄 다 갈아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뺑뺑이가 시작되더라고...

    그나저나 4년 후에... 바뀌면 골치 아파, 그냥 여당 찍어... 이런 일이 제발 없기를...
  • 천지화랑 2009/07/04 11:40 #

    어쩜 그럴 수도.... -ㅁ-;;
  • 2009/07/04 11: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천지화랑 2009/07/04 11:41 #

    뭐 이런 걸 굳이 비밀글로....

    맞습니다. 정확히 지적해 주셨어요. 굳이 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한민국 조직문화 자체가 이런 식이나 모르긴 몰라도 김대중 노무현때도 다르진 않았을테죠. 다만 이런 식일거면 차라리 '실용'이니 뭐니 소리는 말라는 겁니다. -_-;;
  • J H Lee 2009/07/04 11:17 # 삭제 답글

    음...

    주사라고 하면 거의 말단이랄까..

    시민센터(동사무소)는 모르겠는데, 구청의 경우 실질 업무를 보는건 죄다 주사인데..


    어... 좀 놀라운데요.
  • 천지화랑 2009/07/04 11:42 #

    군무원들 중에서도 병들이랑 농담따먹는게 주사인데 말이죠 -_-;;
  • StarSeeker 2009/07/04 11:45 # 답글

    이건, 실용정부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때마다 벌어지는 일이죠 뭐... -_-a

    그나저나 실용왕가카께서는 작년에 전봇대 하나 뽑았다고 자랑을 하더니, (빠르긴 한데) 알맹이 없는건 똑같군요.
  • 천지화랑 2009/07/04 14:24 #

    그러니까 실용이란 소리 좀 하지 말란 말이죠. 아, 이젠 안 하던가요 -ㅁ-;;
  • dhunter 2009/07/04 12:09 # 삭제 답글

    주사면 바닥 오브 바닥...

    관계는 없는데 농협에도 개혁을 하겠다는 가카의 으지가 밀어붙여내려오면서...

    얼마전 시사기획 '쌈'에서는
    '그랜저에 기사딸린 조합장'
    '40만원샀을때 일반 마트보다 1만원 비싼 하나로 마트'
    등등의 지엽적인 공격이 쏟아져 내려오더군요... -_-

    2부는 아예 제목도 없는 가제인걸 보면 러닝타임 내내 채워야 할 내용을 거의 들이부어 맞추는 수준인가본데 것참 -_-);
  • 천지화랑 2009/07/04 14:24 #

    이젠 씨방새에 이어 개병신인건가요 -_-;;
  • tranGster 2009/07/04 12:24 # 답글

    풉, 보수적인 가정 조차도 현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전환되고 있더군요.

    이미 현 정권은 끋
  • 천지화랑 2009/07/04 14:24 #

    그리고 히메 추종 -ㅁ-;;
  • 타누키 2009/07/04 14:33 # 답글

    뭐 경기도 교육감 휘하 밑으로도 꽤 바뀌고 있으니.....이번 경기도 교육감 임기야 아실테고..
    물론 주사급까지야 아닙니다만 교육계가 수평지향적이란걸 생각해보면 비스므리하다고 봅니다.
  • 천지화랑 2009/07/04 20:13 #

    이건 뭐 누가 권력을 잡든 그저 한숨입니다.
  • 2009/07/04 16:18 # 삭제 답글

    음... 행정관서에 있어본 경험으로는 '주사'라면 두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공무원들끼리 관례적으로는 부르는 호칭으로 특정한 직책이 없는 공무원을 그냥 '주사'라고 불러줍니다.
    그리고 하나는 공무원의 직급으로 6급 공무원의 명칭입니다. 서기보(9급) - 서기(8급) - 주사보7(급) -주사(6급) - ..... 이런 식이죠. 6급 공무원이면 부서에서 보통 계장급 정도는 되지요. 회사로 치자면 팀장급 정도 될 듯. 아마 본문의 주사는 계장급의 6급 공무원을 말하는 것은 아닐지......

    혹시 또 좌빨들이 괴담을 퍼뜨린다 어쩐다 하는 소리가 나올까봐 확인삼아 글 남겨봅니다. 아무리 이명박과 졸개들이 천치라도 말단 공무원까지 바꾸지는 않겠다 싶어서요.
  • 천지화랑 2009/07/04 20:13 #

    당근 계장급 6급공무원 말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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