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국 해군 최초의 해전 - 거진해전 ☆:아지트:★

명색이 제2연평해전 7주년이 되었는데 해군사 기념 포스팅 한 편 정도는 올려야겠죠. 그런데 불행히도 그간 보유하고 있던 꽤 강력한 포스팅거리였던 '배 값 깎던 제독' 이야기는 이미 한국전쟁 기념 포스팅으로 써먹었고.... 뭘 올릴까 고민하던 끝에....




흔히들 1999년 6월 15일의 제1연평해전을 가리켜 '휴전 이후 최초의 남북 해상전'이라고 말합니다. 무수한 대간첩선 작전이나 해금강 해안포대에 의한 일방적인 피해가 아닌, 정규 군함끼리의 전투였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하지만 이보다 39년 전, 동해상에서는 남북한 정규 해군 함정끼리 해전을 벌였습니다.

백두산함이 1950년 6월 25일에 치른 '동해 해전'이 정규 전투함끼리의 전투가 아니라서 '해전'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면, 어쩌면 이 해전이야 말로 대한민국 해군에게 있어서 최초의 '해전'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해군에서조차 이 해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0.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되고,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7월 29일에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이런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해군 DE-72 강원함은 7월 22일부터 경기함(DE-71)으로부터 경비임무를 인계받아 동해 북방해역을 초계중이었습니다. 당시 강원함의 경비구역은 동해 북방한계선에서 10마일 남쪽, 거진 동방 5~30마일 구역이었죠.


DE-72 강원함
(출처: 자주국방네트워크 자유사진란
         http://koreadefence.net/bbs_detail.php?bbs_num=1591&tb=photo&b_category=&id=&pg=10)


당시 강원함의 경비 경로(거진 동방 노란색 선)

1.

1960년 7월 30일의 항해제1직(04~08), 강원함은 거진 동방 약 5마일 지점에서 8노트의 속력으로 090도 방향으로 항해합니다. 그리고 06시, 거진 동방 약 20마일 지점에서 강원함은 방향을 돌려(270도) 육지를 향하기 시작했죠. 이 날은 06시 30분(서머타임 적용)이 일출이라서 이미 바다 한복판은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2.

배를 돌리자마자, 우현 견시수로부터 견시 보고가 들어옵니다.

"우현 견시보고! 선박 한 척! 방위 030도! 거리 1만(10000야드=10마일)! "

이 때 강원함은 북방한계선에서 고작 1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초계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강원함보다 북쪽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당시 강원함 작전관이자 1직 당직사관이었던 엄영보 대위(해사 7기. 준장 예편)가 즉시 함교에서 쌍안경으로 견시가 보고한 방향을 살피자, 강원함을 향해 달려오는 의아선박 1척이 보였습니다. 물살의 크기로 보아 어선은 아니고 북한함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고 하지요. 전투정보실(CIC)에 확인하니, 과연 미식별 선박(SKUNK)이 레이더에 잡혀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엄영보 제독의 증언에 따르면, 거리는 10마일, 속력은 10노트, 침로는 120도.



당시 강원함과 의아선박의 위치


3.

0607i 강원함은 총원 전투배치 경보를 울립니다.
0612i 강원함은 속력을 15노트로 올리고, 전 포대는 '회로 및 전도검사'로 빙빙 돌아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의아선박은 계속 강원함을 향해 달려오고, 강원함 역시 15노트에 침로 270을 유지하고 있었죠.
0620i 드디어 의아선박과 강원함의 거리가 5마일 정도가 되고, 의아선박은 인공기를 게양한 북한군 함정으로 판명됩니다. 그제서야 북한군 함정은 뒤늦게 도망친다고 강원함 전면에서 우현으로 급선회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강원함이나 북한군 함정이나 똑같이 침로 270을 유지하게 되었죠.

자,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되고 보니 두 함정의 위치가


음?


그렇습니다.

어느새 적함이 강원함보다 남쪽으로 내려와버린 겁니다.(....)


-_-;;


적함의 번호는 371. 당시 '북괴함정식별책자'에 따라 이 배는 북한 해군의 PBS형 함정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사진은 통 나오는 게 없고, 당시 북괴함정식별책자에 수록된 제원을 소개하자면

배수량 50톤/승조원 17명/속력 15노트/무장 20mm 쌍연장포 2문, 12.7mm 포 2문
(그러나 이 중 후에 강원함에서 발견된 적함 주포탄으로 미루어볼 때, 주포는 아마 40mm 혹은 37mm 정도로 추정됩니다.)

강원함이 들이받기만 해도 속수무책인 배였죠. -ㅁ-;;


4.
0625i 강원함은 국제법상 합법적 지위를 확보할 겸, PBS-371에게 정선을 요구하는 'K'기를 게양합니다.

K기

(여기서 의아한 것은, 엄영보 제독은 '붉은색의 K기'를 올렸다고 하는데 사실 K기는 그저 '통신요청'일 뿐이지 정선요구기가 아니고, 게다가 붉은색도 아니라는 겁니다 정선요구기로는 L기가 있습니다만, 이 역시 붉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PBS-371은 이 국제신호기를 해독하지 못하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계속 도주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주극도 점점 끝을 향하고 있었죠. 속력의 차이로 두 함정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갔고, 게다가 이대로 가다간 육지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예상 가능한 적함의 대응은 항복, 혹은 저항. 둘 중 하나였는데, 강원함은 일단 유리한 상황에서 그저 추격만 계속하기로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서남쪽의 PBS-371은 눈이 부셔서 강원함을 제대로 조준하기 힘든 반면에 해를 등진 강원함은 얼마든지 PBS-371을 조준할 수 있었죠.


적_정장의_심정.jpg


5.

0657i 두 함정이 육지에서 6~7마일 정도 지점까지 왔을 때, PBS-371은 약 2.5마일 거리까지 좁혀들어온 강원함에 대해 돌연 포격을 개시합니다. 그와 함께 강원함 역시 응사 명령이 떨어져 함내 전 포대가 응사를 개시하죠.

PBS-371의 첫 두 발은 강원함 함교에 정확히 명중하고 전투정보실(CIC)에도 두 발이 명중합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포탄이 모두 폭발하지 않고 그냥 철판을 뚫기만 하죠. 다행히 함교에 명중한 두 발은 함교 전면에 자리잡은 음탐실 서류캐비닛에 맞아 서류를 태우는 선에서 끝났습니다. 철갑탄을 쏜 건지 불발탄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_-;;


적_정장의_심정(1).jpg


6.

강원함의 포격이 시작된 지 10분 쯤 지나자 PBS-371의 속력도 떨어지고 배도 약간 기울어졌습니다. 하지만 적함의 도주와 저항은 계속되었고, 전투 개시 20~30분이 지나자 각 포대의 상비탄약이 바닥나 재보급을 위해 수 분간 포격을 중단하기도 했죠. 하지만 일단 탄약 재보급이 끝나자, 강원함은 약 2,000야드 거리에 머물면서 3인치포와 40mm포로 집중 사격을 가합니다.

0740i 마침내 거진 동방 4마일 해역에서 PBS-371함이 침몰합니다.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해전기념' 동판에는 이 위치를 38-28N 128-33E로 기록하고 있지요.

PBS-371의 침몰 위치


7.

이후 확인된 강원함의 피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상 4명(찰과상 5명 미포함)
함교/조타실 포탄 각 2발 명중(음탐실 서류 소실)
좌현 사관침실/기관실에 직경 10cm가량의 구멍 5~6개
사소한 파편 흔적 30여 개소


8.

적함이 침몰하고 나니, 생존자 네 사람이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강원함에서 구명환을 매달아 던졌는데, 처음에는 다들 잡기를 주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중 한 사람이 "잡아! 잡아!"라고 소리치니 그제서야 모두들 구조에 응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4명 중 마지막 한 사람은 하필 파도가 거세게 일어서 10여분 동안이나 구명환을 잡으려 애쓰다가 결국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포로를 구조하고 나자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이 배의 승조원은 총 15명이었는데 당시 함장은 부재중이었고 정치작전군관(중위)이 선임군관으로 함을 지휘했다고 합니다. 구명환을 잡으라고 소리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죠.

자,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양반에게 물었습니다. "왜 내려온거요?"

뭐라고 대답했냐 하면....


호기심에 추적해보다가 그만....



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호기심에



저 군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9.

0800i 인명구조를 막 끝냈을 때, 금강산 동쪽 '수원단' 인근에서 북한군 PT정 3척이 남하해 오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 PT 3척은 같은 해 4월에도 이곳에 나타나 당시 경비중이던 PF-66함에 어뢰 6발을 발사하기도 했었다지요. 아마 이 때에도 PBS-371의 격침을 보복하기 위해 출동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해군본부에서 강원함에게 속초에서 육군첩보대와의 상봉을 지시한 덕에 PT와의 조우는 피할 수 있었죠. 1040i에 속초외항에서 육군첩보대(HID) 첩보정과 상봉, 강원함의 부상자 4명과 포로 3명을 인계하지만 애석하게도 기관부 소속 전승원 2등조는 후송 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1500i 강원함은 다시 거진 근해로 복귀하는데, 그 사이에 속초 근해를 경비하던 PCEC-52 명량함이 강원함을 대신해 거진까지 북상했다가 선체조각에 매달려 표류중이던 북한군 생존자 2명 중 1명을 구조해 강원함에 인계합니다.




뒷이야기 1.

원래 약 20일 정도 거진 해상을 경비해야 했던 강원함은 함대사령부의 지시로 동해에 급파된 APD-81 경남함과 임무 및 포로(명량함에서 인수받은 1명)를 인계하고 7월 31 15시에 진해에 입항합니다.

이후로 강원함은 약 1주일 정도 정신없는 나날을 보냅니다. 윤영원 1전단 사령관과 이희정 함대사령관, UN군사령부 요원, 이용운 해군 참모총장 등이 계속해서 방문해 작전경과 브리핑을 받고 자료를 제출하지요. UN군사령부 요원들은 강원함의 작전행동이 정전협정과 국제법에 합당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뒷이야기 2.

8월 4일 경, 작전 유공자에 대한 훈장내신 심의위원회가 조직됩니다. 위원은 부장 홍영현 중령과 기관장 조내희 소령, 작전관인 엄영보 대위였습니다. 이 때 부장 홍영현 중령은 당시 당직사관이었던 작전관 엄 대위를 훈장내신자로 천거하려 했지만, 엄 대위는 "전사, 부상자까지 있는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주시지요."라고 말했고, 그 결과 이 작전의 논공행상은 다음과 같이 결정납니다.

금성충무훈장
-함장 김형배 중령

상의훈장
-부상자 3명+전사자 1명

함대사령관 표창
-작전관 엄영배 대위
-포술장 김영배 대위

하지만 간첩선을 잡은 것으로도 여러 사람 훈장을 타는 판에, 포술장을 비롯한 포요원들이 훈장을 받지 못한 것을 이후로도 많은 해군 내 포갑요원들이 애석해했던 모양입니다.


뒷이야기 3.

포로 4명은 1주일만에 UN군 사령부를 통해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송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별 정보는 수집하지 않고 그냥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송환이 이루어진 모양이지요. 아무래도 당시 국내 정세가 워낙 이래저래 정신이 없던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뒷이야기 4.

이 해전에 관해서는 한국, 조선, 동아일보의 기사가 남아있긴 하지만 정작 당시의 항박일지도 삭제되고 엄영배 제독이 찍어놓은 20장이 넘는 사진도 남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OTL




자료 출처: 격월간 해군 2008년 1.2월호. 18p~23p. 엄영보 예비역 제독.


PS: 이 포스팅과는 다르게, 강영오 제독의 회고록을 근거로 한 '거진해전' 포스팅이 하나 있습니다.
      http://kr.blog.yahoo.com/waterview33/351.html?p=1&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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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annan 2009/06/30 00:23 # 답글

    오 멋진듯..

    호기심에 그만... 풋..
  • 천지화랑 2009/06/30 21:44 #

    그래서 어른들이 암데나 빨빨거리고 싸돌아댕기지 말라고 하지요
  • 번동아제 2009/06/30 01:06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정선하라는 시그날 플래그는 리마가 대표적인데...리마말고 킬로도 통신할게 있으니 정선하라는 뜻으로 사용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말씀처럼 킬로는 붉은 색이 아니니 의문스럽네요. 예전에 다른 도안이 사용된 적이 있었던 건지...
  • 천지화랑 2009/06/30 21:44 #

    1963년엔가 국제신호기가 한 번 개정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마 알파벳 플래그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 참 아리송하네요. 어디 여쭤볼 곳 없을까요.
  • 대한민국 친위대 2009/06/30 01:13 # 답글

    호기심에 그만 추적.... ㅡㅅㅡ 공산권 국가의 군대들은 정치장교들이 다 말아먹는가 봅니다. 듕국이 그래야 할터인데...(응?)
  • 천지화랑 2009/06/30 21:45 #

    모주석때 잘 말아먹었거늘 등주석땜시.... OTL
  • 대한민국 친위대 2009/06/30 23:06 #

    아아아아악! 이 망할 등소평 빨갱이색기!!! (엉?)
  • band 2009/06/30 01:35 # 삭제 답글

    APD-81...APD-81...
  • 천지화랑 2009/06/30 21:45 #

    경남함 출신이신지?
  • ZECK-LE 2009/06/30 04:11 # 답글

    이러니까... 한국의 현대역사 기록이 개판인 겁니다. 아니 정말 승전 맞는데도 사진도 없고 기록도 없으니 뭘 더 어떻게 구체적으로 역사로써 남기라는 겁니까?

    노무현 욕하던 전직 장성들, 그들은 노무현 욕 한것을 두고두고 반성해야 합니다. 승리의 역사, 당당한 역사마져 기록부제로 그저 설화수준으로 만들 뻔 했잖아요.
  • 천지화랑 2009/06/30 21:45 #

    민족정론지의 해군드립 보면 말이 안 나옵니다. -_-;;
  • 네비아찌 2009/06/30 08:38 # 답글

    역시 정치장교 동무는 만악의 근원^^;
    그나저나 전투 기록까지 사라져 버린 것은 ZECK-LE 님 말씀처럼 참 통탄할 일입니다....
  • 천지화랑 2009/06/30 21:46 #

    사실 엄영보 제독께서도 당시 기록이 전무해서 자신의 기억과 스크랩해둔 신문기사를 보고 정리해야 했죠.
  • 행인1 2009/06/30 11:28 # 답글

    사실 저 시절에는 기록관리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긴 한데(정부기록보존소도 없었음-1962년에야 내각사무처 총무실 문서촬영소 설치, 문서보존기한도 짧음) 그래도 뒷이야기 4는 정신이 멍해지는군요.
  • 천지화랑 2009/06/30 21:47 #

    그렇다 해도 어떻게 '군'의 기록관리가 저 정도인지 그저 멍해지는군요. -_-;;
  • 행인1 2009/07/01 15:52 #

    '대통령 관련 기록'으로 가면 보다 정신이 멍해진답니다.
  • 검투사 2009/06/30 12:41 # 삭제 답글

    오늘 <메트로>를 보다보니... 그나마 <뽕초밥 쇼타>와 더불어... 볼만한 몇 안 되는 <메트로> 컨텐츠 중 하나인 "성공회대 교수님의 말씀"에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다보니 석굴암이며 첨성대며 제대로 된 복원은 커녕, 원래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는 4대강 사업으로 손 본 곳들마저 '불도저가 오래전부터 다니던 길'이라는 이야기가 후세에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는...
    반 만 년 유구한 역사이면 뭘할까요... -ㅅ-
    기록이란게 제대로 있지 않아서리... 환웅이 사실 머나먼 우주의 "12콜로니"에서 배틀스타의 함장으로 계시던 분이시고, 웅녀는 복스럽게 생긴 미모의 사일런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응?... 이해 안 되시는 분은... <배갈> 시즌 4 마지막회를...^^;)
  • 천지화랑 2009/06/30 21:48 #

    저도 오늘 전철 안에서 읽었습니다.

    이러다가 한 100만년 후의 후손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일러집을 보며 "100만년 전 일본열도의 여자들은 이렇게 생겼심" 하고 추측하는 거 아닐런지. -_-;;
  • 미친과학자 2009/06/30 13:15 # 답글

    한줄요약 : 너무 궁금해 하면 다쳐!
  • 천지화랑 2009/06/30 21:48 #

    탐구정신이 꺾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응?)
  • band 2009/07/01 14:22 # 삭제 답글

    1:60년이면 해군으로서는 여러가지 일이 복잡하개 돌아갈때이니 뭐라하기는 그렇습니다. 작사에서 문서관리한다고 해도 뭐라하기는 그런 시절이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울쪽으로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분실됬을거라 봅니다. (어쩌면 괌이나 하와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

    2: 막상 개인자료를 찾으면 "군사기밀이므로 몇년 보관후 폐기했다...라는 예기를 많이 듣개 됩니다.

    3:81은 정박한것만 봐왔었지요. 사람이 종종 사라지는 배라고 종종 들었고요.
  • ZECK-LE 2009/07/01 16:45 #

    그래서 일원화 된 문서 보관소 및 기록 저장고가 필요한 거죠.

    그렇기에 대통령 기록보관소의 건립은 정말 한국이 재대로 한 일이죠. 문제는 그런 노무현의 빛나는 업적을 다 부순게 이명박.... 국회동의를 얻어서 전직의 기록을 맘대로 꺼내보고 약점 잡으려고 눈이 벌겋게 된 무리들이니...

    군대고 정부기관이고 그런 개인기록들은 보관 및 철저한 분석을 통한 데이터 베이스 수립을 해야 하는데 그냥 보관하고 기간지나면 패기...

    왜 한국이 개판인지 바로 답이 나오는거죠. 미국처럼 케내디 암살 이후 존슨 부통령으로 이임된 시절에도 기록은 잘 보관되었습니다.를 보면 한국의 수준이 얼마인지 알 만하죠.
  • 천지화랑 2009/07/01 22:08 #

    솔직히 한국군의 기록보관 보면 이게 뭐하자는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기간 땡 하면 다 그냥 쇄절기에 갈아버려요 -_-;;

    근데 사람이 사라지는 배라니요? -ㅁ-;;
  • band 2009/07/02 01:42 # 삭제

    1: 90년대의 해군관련일로 당시의 관계자를 뭐라하는 것이야 당연히 할만하지만 60년대는 상황이 다른때라는 거지요. 60년대는 전 대통령 들먹이면서 연관해서 성낼만한 여력이 있는 시절이 아니죠. 미국과 단순비교하기전에 미국만큼 우리가 사회,경제체제가 잡혀있는가...생각해보면 오히려 웃음거리 밖에 안되죠. 한국해군이 미해군만큼 큰조직도..자금이 있는것도 아니니까요. 제대로된 DD급을 건조하개 된개 불과 십수년밖에 안되는 군대..라는점도 생각해 봐야갰지요.


    2:예비역에게 무슨무슨일로 자료요청하면 듣던 예기가 저것이라는 것이죠. 어찌보면 군인의 자세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한대 그럴람 아예 두고 나오던가....

    2: 야간견시나...당직교대시때 자주 사라(증발)졌다고 하지요. 뭐 기관부에서 여러가지 꽃피는개 당연하던 시절이니......
  • 오호통재라 2009/07/01 23:29 # 답글

    ...정치장교놈의 호기심땜에 애먼 병사들만 죽었군요,
    그놈은 일반 병사들처럼 굶어봤으려나요.
  • 천지화랑 2009/07/01 23:29 #

    바랄 걸 바라시지요. ㅎㅎ~
  • 에르네스트 2009/12/04 11:57 # 답글

    기록보관에대해서 문헌정보학과쪽에서 이야기하는것이....
    유구한 전통 말아먹고
    일본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나에게 불리한자료 남을확률 없에기~~ 가 전통이되어서 이모양 이꼴이라는 말도 있죠~
  • 천지화랑 2009/12/04 12:24 #

    .... 왠지 그럴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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