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수부 집무실에 어서오세요~


대원수부 본청 대신 무허가 날림 이글루에 세들어 살고 있는
무적의 솔로부대 대원수전국프롤레타리아연합회 총재
덤으로 교양따윈 캐리어 바퀴에 잘근잘근 밟아뭉개버린 용돌이 천지화랑입니다.


이 얼음집은 집주인의 각종 망상과 잡설부터 시작해
궁상의 극치를 달리는 생활이야기
가끔 세상사나 역사에 대한 뻘포스팅
여자들이 진절머리 낸다는 군대 이야기
클라나드와 유키네님에 대한 끝없는 빠심(과 망상의 마안)

따위로 채워지니 뭔가 이상하다 싶으신 분들은 백스페이스나 Alt+F4를 권장합니다.


그냥 뭐.... 남들 다 하나씩 만드니까 나도 하나 만들어볼까....가 아니라


1. 개인적으로 하실 이야기가 있다면 여기에 달아주세요. 링크납치, 제발 부탁드립니다~!

2. 상업, 광고성 글은 보이는 즉시 즈려밟아드립니다.

3. 타인에 대한 비방의 수위가 심각하다면 집주인의 결정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실제 이럴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4. 이 얼음집은 핫팩에 깔깔이조차 없는 관계로 덧글, 덧덧글 모두 열렬히 환영합니다.
주인장은 내팽개쳐두고 얼마든지 떠들어주시면 저야 감사합니다.

5. 로그인과 비로그인 방문객의 덧글 제한은 없습니다만 웬만하면 로그인을 좀....
어쩌다 민감한 사항에 대해 로그인해 글 쓰시기 어려운 건 압니다만 웬만하면 로그인 댓글을 보고 싶달까요
(라기보다는 방문객 성비 좀 맞추고 싶달까요. ㅠ.ㅠ)

6. 미리 댓글 한 줄만 남겨주시고 출처만 밝혀주신다면 포스팅은 얼마든지 퍼가셔도 됩니다.
(이 뻘포스팅을?)

7. 이 블로그는 유키네 '숭배' 블로그입니다.
덤으로 쿄 재혼을 지지합니다.[후다닥!]

댓글을 다시면 유키네님께서 주문을 내려주십니다.



2009. 04. 13.

집주인
천지화랑


PS: 가끔 주인장이 스팸댓글 지우려다가 엉뚱한 댓글을 날려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방문객 여러분들의 넓은 아량을 바랄 뿐입니다.

by 천지화랑 | 2010/12/31 09:42 | 트랙백 | 덧글(66)

너에게 건네는 코코아(가제) - 망상

그냥 막장의 뻘망상.






'나'는 어느 날 무심코 헌혈차에 올라탔다가, 내 혈액형이 A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B형, 어머니는 O형, 누나도 O형인 집안에서 혼자만 A형이라는 기가 막힌 상황.

잠시동안 집안을 휩쓴 평지풍파(....). 그리고 가족들은 '나'의 출생일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가온 진실은, 17년 전 자신이 다른 누군가와 '뒤바뀌었다'는 것.

끈질긴 싸움 끝에 찾아낸 '또 다른 나'. 그런데, 난 분명히 남자애고, 그 날 난 다른 남자애와 바뀌었을 텐데....


어째서, 넌 여자애야?




라며 시작하는, 개연성 제로의 캐막장 TS-Boy meets Girl. -_-;;






실제 집필은 내가 솔로부대 탈영한 다음에나 가능할 듯.

by 천지화랑 | 2009/11/05 22:07 | ♧:기타 소설(설정&자료):♣ | 트랙백 | 덧글(2)

아버지께 노트북을 빌려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디 연수를 가시는데 노트북이 필요하시댑니다.

제가 노트북을 가지고 있으면 부친께서도 득을 보실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흔쾌히 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노트북을 부친께 빌려드리고 책만 챙겨서 학교 오는 도중에 생각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_빌려가신_노트북_바탕화면.jpg











좀 더 임팩트 큰 걸로 깔아놓을걸 그랬나요? -_-;;

by 천지화랑 | 2009/10/30 10:33 | 트랙백(1) | 덧글(31)

20XX년 X월 X일, 마지막 혁명력사 수업

마지막 수업, 1945년 8월 16일 <= 나야스 님 블로그



자아,

엄청난 후폭풍을 감수하고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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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게다가 김영직 교원 동지께서는 그 전날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1982년 론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하셨는데, 동무들과 노느라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자아비판을 당할까 봐 몹시 두려웠다.

차라리 수업을 빼먹고 장마당을 쏘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다락밭에는 강냉이가 우거지고 목공기업소 뒤쪽의 틀판에서는 남조선 국방군 병사들이 발 맞추어 걷는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혁명력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들판쪽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영직 교원 동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라 나는 급히 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리당 사무소가 있었는데, 그 곳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난 2년동안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꼭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패전이라든가 당원 자수 권고, 남조선군사령부의 명령 등 나쁜 소식만 그곳에 붙어있었으니까.

나는 뛰어가면서 생각했다. '또 무슨 일일까?' 그러고는 광장을 가로질러 뛰는데, 게시판을 보고 있던 선반제작기업소일꾼 박수태 동지가 나에게 소리쳤다. "야, 뛸 것 없다. 학교는 지금 가도 늦지 않았어." 나는 속으로 농담하지 마시라고 중얼거리고는 학교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여느때 같으면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동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책상을 쿵쾅거리며 옮기는 소리,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는 교원 동지의 소리등이 교실 밖에까지 들리곤 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태양절 아침처럼 고요했다. 동무들이 떠드는 틈을 타 슬그머니 자리로 들어가려던 내 생각이 빗나갔다.

창문 너머로 이제 제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과 커다란 자막대기를 옆구리에 끼고 말없이 책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김영직 교원 동지가 보였다. 이렇게 쥐 죽은 듯 고요한 교실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다니!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부끄럽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날과 전혀 달랐다.

김영직 교원 동지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영지 동무, 괜찮소. 날래 자리로 가 앉으시오. 지금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 참이었소." 나는 얼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부끄러움이 조금 가라앉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원 동지는 군당서기가 오는 날이나 졸업식 때만 입는 멋진 옷에 번쩍거리는 새 김일성배지와 젊어서 받으신 1등로력훈장을 달고 계셨다. 교실 안에는 다른 때와 달리 엄숙하고 침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실 뒤쪽 의자에 마을 인민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모자를 손에 쥔 오절 영감님, 전 리당 서기, 우편국 일꾼 아저씨, 그리고 여러 어른들. 모두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어딘가 슬픈 표정이었다.

오절 영감님은 낡은 김정일 혁명력사 책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큼지막한 안경을 쓰고는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이러한 모습에 놀라고 있는 사이 김영직 교원 동지께서는 교단 위에 올라가 부드럽고 엄숙한 소리로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늘은 마지막 혁명력사 수업시간입네다.
서울에서 명령이 내려왔는데, 북조선 학교에서는 남조선 도덕과 륜리 교과서 영어와 수학 과목만을 가르치라는 것입네다.
래일 영어와 수학 과목을 가르칠 새 교원이 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러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마지막 혁명력사 수업인 것입네다."

나는 교원 동지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지독한 남조선 괴뢰놈들 같으니! 리당 사무소 게시판에 붙은 거이 바로 이것이였구나.

나의 마지막 혁명력사 수업!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 어버이 수령동지의 탄신을 기원으로 하는 주체연호도 서기연호와 마음대로 바꿔 쓸 줄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이제 혁명력사를 배울 수 없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고사리를 캐여오겠다고 수업을 빼먹은 것이나, 강가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지겹고 재미없던 교과서와 김일성 동지 전집, 김정일 동지 선집,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등이 이제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김영직 교원 동지도 그렇다. 보통 때에는 적대계층의 새끼라고 자막대기로 아프게 때리시고 무서운 얼굴로 자아비판을 시키시던 동지셨는데,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서글퍼졌다.

가여운 교원 동지! 김영직 교원 동지께서는 인민복을 입으시고 마지막 혁명력사 수업에 경의를 표하고 계신 것이다.

오절 영감님은 몇십 년 동안 혁명력사를 익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마을 인민들도 이제 혁명력사를 익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마을 인민들도 이제 혁명력사를 배울 수 없다는 생각에 교실 뒤에 와서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였다. 그것은 마을 인민들이 지금까지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않은 것을 뉘우치는 의미이기도 했다.

또 40년 동안이나 혁명력사를 가르친 교원 동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마침내 사라져버릴 조국에 투철한 혁명정신을 바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교원 동지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내가 암송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 어려운 주체사상의 사회력사원리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시작부터 기억이 안 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안타까운 심정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앞에서 김영직 교원 동지의 말씀이 들려왔다.

"영지 동무, 동무를 비판하는게 아니오. 동무는 이것으로 충분히 비판이 되였소. 동무뿐만 아니라 우리도 날마다 이렇게 생각했소. '시간은 충분해. 래일이 있는데, 뭐. 래일 공부하지.' 그 결과가 이것이오. 교육을 다음날로 미룬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이었소. 남조선 괴뢰도당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오. '위대하다는 주체사상의 근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슨 혁명의 북조선 인민이라고 우겨대느냐.'
영지 동무, 그러니까 동무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오. 우리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이오. 부모님들도 되도록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마당이나 중국에 아이들을 내보냈소. 나조차도 공부를 시키는 대신 텃밭의 김매기 전투를 시킨 적이 있었소. 내가 피곤할 때면 동무들에게 자습을 시킨 적도 있었소. 오늘의 결과가 있기까지는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김영직 교원 동지께서는 주체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주체사상은 세계에서 인민대중이 력사적 주도세력으로 되는 시대의 새로운 력할과 가치를 가장 잘 제시한 탁월하고 과학적인 사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사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왜냐하면 어떤 민족이 다른 제국주의 침략자의 식민지가 되여 노예가 된다 해도 자신들의 주체성을 확실히 사수하고 있으면 그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이 혁명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그런 다음 교원 동지는 김정일 장군님의 론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하셨다. 나는 떠듬떠듬 따라 읽기도 하고, 머릿속에 교원 동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 보기도 했다. 내가 이토록 잘 료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교원 동지의 말씀 하나하나가 아주 쉽게 료해되였다. 교원 동지의 목소리는 높았고, 조금이라도 더 쉽게, 더 많이 가르치고 싶은 듯이 렬성적으로 들렸다. 교원 동지는 떠나시기 전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지식과 가슴속에 있는 모든 혁명정신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다.

혁명력사 시간이 끝나고 자습 시간이 되였다. 김영직 교원 동지께서는 모두에게 나누어 줄 새 베껴쓰기본을 보여주셨다. 거기에는 천하 명필인 김정일 장군님의 서체로 '주체, 선군, 주체, 선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교원 동지는 그것을 교탁 위에 가로로 세워 교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글자들은 마치 인민공화국기가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얼마나 렬심이였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종이 위를 사각사각 스치는 원주필 소리뿐이였다.

창문으로 갑자기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지만 아무도 그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1학년 학생들조차도 정성껏 김정일 장군과 같이 흘려쓰는 연습을 했다. 마치 그 글씨도 혁명과업의 일부인 것처럼 신중하게 말이다.

학교 지붕에 비둘기 몇 마리가 내려앉아 구구구 울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래일부터는 저 비둘기들도 남조선 자본주의 노예들의 사상으로 미제의 괴뢰가 되어 주체성 없이 울어야만 하는걸까?' 이따금씩 교원 동지를 쳐다보면, 교단 위에서 주변의 사물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계셨다.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눈 속에 담아 가려는 듯 보였다. 교원 동지는 지난 40년동안 여전했으니까. 다만 걸상과 책상이 오래되어 반들반들해졌고, 운동장의 나무는 더욱 울창하게 자랐고, 교원 동지께서 손수 가꾼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는 더욱 만발해진 것만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 줄 뿐이였다.

이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은 교원 동지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일까.

교원 동지의 녀동생이 2층에서 짐을 챙기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들은 래일이면 이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언제 돌아올 지 기약할 수 없다.

교원 동지는 끝까지 침착하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셨다. 자습시간 다음은 조선력사 시간이였다. 조선력사 시간이 끝난 후, 저학년 학생들은 목소리를 맞추어 일제히 김일성 동지의 노래와 김정일 동지의 노래 합창 연습을 했다. 교실 뒤쪽에 있던 오절 영감님도 안경을 끼고 두 손으로 책을 들고 저학년 동무들과 함께 더듬더듬 불러 내려갔다.

영감님의 목소리는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떨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칠골교회의 종소리가 정오를 알렸다. 그와 동시에 남조선 국방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오전일과 끝' 방송 소리가 창문 밖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김영직 교원 동지는 굳은 얼굴로 교단에 올라서셨다. 내 눈에 교원 동지는 칠판을 다 가리고 서있는 커다란 나무처럼 보였다.

교원 동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나는...." 하지만 무엇인가 목에 걸린 듯 말을 잊지 못하였다. 거기까지만 말씀하시고는 칠판을 향해 돌아서셨다.

교원 동지는 분필을 하나 집어 들고 길게 팔을 뻗어 될 수 있는 한 큰 글씨로 이렇게 쓰셨다.

'주체조선 만세!'

교원 동지는 그대로 칠판에 얼굴을 기대셨다. 그러고는 우리 쪽은 보지도 못하고 손짓하셨다.

"이제 수업은 끝났소. 다들 돌아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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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생각하면 지는겁니다. 어? 누가 이 시간에 문을....

by 천지화랑 | 2009/10/27 23:54 | 트랙백 | 덧글(33)

그게 12년이나 되었던가 -

12년만인가 -









12년 전, 1997년의 나는 12살, 서울 위성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꼬맹이였다. 야구? 그딴거 재미 하나도 없었다. 저 수많은 규칙들은 수학 공식도 제대로 못 외우는 대갈통을 그저 드릴마냥 쑤셔댈 뿐이었고, 그냥 공을 치면 치나보다, 아니면 아닌가보다 할 뿐이었다. 군산이 친정인 어머니는 하루종일 부업을 하다가 저녁식사를 할 때면 꼭 TV를 11번에 맞춰놓고 해태 경기를 보셨다. 해태가 안타 하나 내면 그저 좋아서 싱글벙글이셨다. 어머니께 왜 해태만 응원하냐고 물으니까 광주 팀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쌍방울은 전주팀인데 왜 엄마는 광주팀을 응원하냐고 물으니까, 쌍방울은 못하니까 해태를 응원하신댄다.

어느 날 또 해태가 이겼다. 14인치 TV 속에선 폭죽이 날아다녔다. 우승이랬다. 하루종일 부업 하느라 피곤에 찌든 어머니는 내가 나중에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가장 신난 표정을 지으셨다. 물론 난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다만, 그 어린 내게 해태 타이거즈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저 남쪽 광주에 둥지를 틀었다는 야구팀은, 킹왕짱,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상 최강의 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작년에도 우승했고 옛날에 아주 어렸을 때에도 우승했고 또 그 전에도 우승했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우승했으니까 진짜 졸라짱센 팀, 그런 존재였다.






가끔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를 봤다.

옛날의 그 호랑이가 아니었다.

선동렬 이종범이 일본으로 가서 선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아는 야구선수라고는 선동렬 이종범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누가 야구를 하지?






아버지의 월급이 반토막이 났다.

사람들이 줄줄이 해고를 당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파산 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파산이 나면 죽어라 뼈빠지게 일해서 내 재산 한 푼도 못 갖고 무조거 빚 갚는데 써야 한다고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팀, 해태는 사라졌다.

어느 집 아버지의 일자리와 함께.




상무가 대신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광주 사람들이 결사 반대했다고 한다.

기아가 대신한다고 했다. 우리 동네에도 공장이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그 회사도 현대에 넘어갔다. 아쉬웠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팀은 이리저리 휘둘렸다. 해태는 더 이상 없었다. 타이거즈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 호랑이는 내가 엄마랑 저녁밥 먹으면서 보던 그 힘센 호랑이가 아니었다.

프로야구도 프로축구도 잘 안 봤다. 가끔 기아 타이거즈의 소식을 들었다. 이겼다는 이야기보다 졌다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야구 따위, 호랑이 따위,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런 재미없고 머리만 아프고 지루한 스포츠 따위, 누가 시간 내가면서 볼까보냐.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야자 시간에 TV 틀어놓고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보았다. 삼성이 우승했다. 야구란 거 굵어진 머리로 대충 보니 이해는 간다.

옛날처럼 호랑이들이 다시 펄펄 날뛰면 이 야구도 재미있어질까.

그 해 기아는 3위를 차지했다.









WBC가 열렸다. 사람들이 매일 야구 이야기만 해댔다. 밥 먹으러 가도 야구만 틀어놓았다. 동아리방에 들어와서 야구를 틀어놓고 봤다. 대한민국이라는, 응원할 팀이 생기니 야구도 볼 만 했다.

옛날처럼 호랑이들을 전력으로 응원할 수 있으면 이 야구도 재미있어질까.

그 해 기아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다.








군대에서 올림픽을 봤다. 기대도 안 했다. 야구는 메달이나 따 오면 다행인거다.

그 야구가 어느새 일본을 깨고 미국을 깨고 쿠바랑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인트라넷에서 문자로 생중계를 하며 사무실에서 밤늦도록 야구를 봤다. 그 강하다는 쿠바를 깨고 역사상 마지막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둥근 공 가지고 하는 스포츠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을 응원할 수는 있다.

호랑이들도 응원할 수 있을까.


그 해 기아는 6위에 머물렀다.

역시 프로야구 따위는 보면 안 되는 모양이다.


부산 후임이 있었다.

다른 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롯데다. 가을에 야구 못해도 상관 없다. 일단 롯데가 짱이다.

신문을 펼쳤다. 부산에선 무조건 롯데다. 포스트시즌 못 가도 상관 없다. 가면 좋지만.

어쨌거나 롯데가 짱이다. 여름 한 철 땡인 롯데가 무조건 짱이다. 부산이니까.


응원을 그렇게 하는거였구나.










다시 WBC가 열렸다. 용산에서 캐리어 끼릭끼릭 몰고 가며 TV가 설치된 곳이라면 단 몇 초라도 머물렀다. 대리점이고 중고판매점이고 모니터집이고 상관 없었다.

쭉쭉 올라간다. 손에 땀을 쥐고 발가락을 오므리며 한 방만 한 방만 중얼거리는 맛을 익혔다.

아는 동생이 말했다. 야구는 치킨 들고 맥주 쳐마시면서 보는 거랬다. 아항.











정신 하나도 없었다. 하루종일 물집 터지도록 용산 바닥을 뛰어다녔다. 노무현이 죽었다. 김대중도 죽었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피곤했다. 낮에 틀어준 WBC라면 모를까 한창 퇴근할 시간에 열리는 프로야구는 신경 쓰기도 귀찮았다.

일 그만두었다. 정신 차려보니 기아가 정규리그 1위였다. 어어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규리그 1위로 끝이 났다.








그거, 아는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 12년 전은 그저 옛날 그 때일지 모른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12년 전은 역사다.













12년 전에 마지막으로 우승한 뒤,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진 타이거즈는 내게 그냥 신화로 남았다.

신화 따위, 신화일 뿐이다. 난 기억 못한다. 기억 못하는 내게 그 신화는 역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 보고 싶었다.


그 타이거즈가 정말 우승하는 모습을, 그 타이거즈를 응원하며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단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23년 동안, 처음으로 어느 프로팀을 전력으로 응원했다.

그들이 퇴장하면서 나의 청소년기는 시작되었고, 그들이 되돌아오면서 나의 청소년기는 끝을 고했다.














고맙다, 호랑이들.

신화를 내 앞에 되살려줘서.


안녕, 나의 청소년기여.

열광할 대상을 찾지 못했던, 어딘가 텅 비어있었던 내 어린날이여.














앞으로 다시 12년 뒤에,

그 때는 또 어느 젊은이가 이런 주저리를 늘어놓고 있을까.

작년에 우승한 SK를 떠올리며, 아니면 내년에 우승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by 천지화랑 | 2009/10/24 23:41 | ☆:잡다한 감상문:★ | 트랙백(1) | 덧글(19)

본격_시간을_달리는_북조.txt

김대중 무덤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민족 혼이 산다! - by 인사이드월드





숙제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실로 웃겨 미치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간단히 본문으로 워밍업을 해 보지요.


저도의_김영삼_드립.jpg


이런 걸 지지세력이라고 두고 있는 땡삼옹이 불쌍해질락말락 하는군요. 아니, 고도의 김영삼까?





자, 하여간 오늘 본격적으로 소개하려는 것은 이런 교훈도 없고 감동도 없는 김영삼 드립 따위가 아닙니다.

그 댓글에 실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죠.





이 귀중한 증언들을 통해,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완전 고립된 광주에서 이렇게 빠른 전송이 가능하다니, 북조는 이미 100mbps급 초고속 무선 와이브로를 장비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완벽한 쇼를 위해서는 대놓고 찍을 수도 없었을텐데, 북조는 아마 초소형 고화질 캠코더라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 고화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후술합니다.



장갑차며 화기류 사용법을 북조군에게 배워야 하는 허접한 예비군들을 돈들여 조직한 박정희는 희대의 역적입니다.



이런 허접한 교육으로 특수부대원이 될 수 있다면 북한학과 2학년인 저는 당장 국정원 입사해도 되겠습니다.



오오, 장갑차 끌고 지나가는 장면만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니!

북조는 1980년에 이미 HD를 능가하는 초고화질 차차세대 방송을 군부대에까지 보급한 모양입니다!!!!





결론

1. 북조는 1980년에 초소형 초고화질 캠코더를 장비하고 있었다.

2. 북조는 1980년에 최소 100mpbs급 초고속 무선 와이브로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를 비밀리에 전송할 수 있는 소형 넷북도 가지고 있었다.

3. 북조는 1980년에 지나가는 사람 얼굴도 확연히 식별 가능할 정도의 초고화질 차차세대 TV방송을 군부대에도 보급하고 있었다.





조선이 없으면 지구도 없다!!!!







이런 애들하고 뭐하러 대결해? 우린 안 될거야 아마.








진짜 마지막 결론

돈 좀 주세염 ㄳㄳ


소송비가 엄서영 ㅠ.ㅠ

by 천지화랑 | 2009/10/24 17:23 | ☆:잡다한 감상문:★ | 트랙백 | 덧글(32)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노트북 산 다음날 윈도7 릴리즈라니.

by 천지화랑 | 2009/10/24 12:57 | ☆:걍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11)

요새 구상중인 소설 - [가제]아가씨의 101번

'나'는 경기도 광명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엉뚱하게도 큰댁에 입양되어 살아온 지 어언 10년.

그 덕분인지 웬만해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후발대'가 되어 버스에 열차를 이리저리 갈아타며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데 익숙해진 '나'. 하루는 할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언제나처럼 '아버지'의 차가 아닌 버스로 친가에 가기 위해 안성시내의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친척동생들을 데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한 소녀. 하지만 기세좋게 버스에 올라탄 소녀는 버스카드가 인식오류를 일으키자 당황하고, 소년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카드로 두 사람 몫의 버스비를 내 준다.


그저 한 때의 헤프닝일 뿐이라 여기며, 아무런 감흥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온 '나'. 학교에 나가고, 야자를 하고, 언제나처럼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가는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다.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온다. 상냥한 목소리로 공부에 찌든 학생들을 맞아주는 기사 아가씨. 뭔가 익숙한 목소리에 기사의 얼굴을 보니....


그 때 그 소녀가 버스기사?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지상 최강의 막장 자사고 '명천고'와 지상 최강의 무정체도시 광명을 무대로 펼쳐지는

'주변을 치워버린' 소년과, '공백을 안고 살아가는' 소녀의, 둘만이 이끌어가는 밤의 버스 이야기.




써놓고보니까 뭔가 이상하네? -_-;;



하여간에 뭐 본격 버스기사아가씨물.

먼 옛날, 불로동에서 오류동으로 들어가는 버스(60번이었나)를 기다리는데, 꽤 귀여운 아가씨가 어린 꼬마애 둘을 데리고 버스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해두었던 이야기.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_-;;

by 천지화랑 | 2009/10/24 01:44 | ♧:기타 소설(설정&자료):♣ | 트랙백 | 덧글(4)

버스 앞자리의 딜레마

난 탁 트인 것을 좋아한다. 창문도 탁 트인 전면창을 좋아한다. 건물에서도 옥상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큼 급하지 않으면, 혹은 동행이 많으면 '답답한' 지하철은 사양이다.

버스에서도 언제나 앞자리만 골라 탄다. 부득이 뒷자리에 타고 있더라도 맨 앞자리가 보이면 무조건 잡는다. 물론 다치면 서로 피곤하니까 신호등 때문에 정차했을 때만 노려서. 탁 트인 앞유리를 통해 도로가 훤히 보이는 그 기분은 뒷자리에서는 절대로 느끼기 힘든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가 어르신들이 탔을 때.


버스를 유심히 살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버스의 맨 앞자리는 '경로석'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맨 앞자리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높다. 게다가 만일 급정차라도 했을 때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막아 줄 가림판과의 간격도 넓다. 대우 버스들이나 요새 나오는 현대자동차 NSAC모델은 그나마 가림판이라도 있지, 현대자동차의 SAC모델, 혹은 그보다도 더 전의 AC모델은 기사석과 바로 뒷자리 사이에 가림판 하나 없다. 그래서 기사들도 가끔 텅 빈 버스에서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맨 앞자리에 타고 있으면 위험하니 그보다 좀 더 뒤에 앉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아실 리 없다. 아니 젊은 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나는 언제나 좌불안석이다. 학교 가는 버스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아니 내가 주로 이용하는 버스노선들 치고 사람 안 넘치는 노선이 없다. 승차문 바로 옆의 맨 앞자리에 앉아있으니 어르신이 올라타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나다. 어르신이 가장 먼저 보는 '앉아있는 사람'도 나다.

가끔은 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뒷자리 경로석에서 정 양보하는 사람이 없을 땐 내가 앉아있는 앞자리라도 내어드려야지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허리가 굽고 키가 작은 할머님께서 낑낑대며 자리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 불안불안하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긴 나라면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버스가 급정차하게 되면 가림판에 발을 대서 앞으로 굴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만, 여자들만 해도 이게 그리 쉽진 않다.


'도서관 전쟁'을 읽다가 정말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선의'에 의한 '피해'.

휠체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한 이용객에게 무리하게 친절을 베풀었다가 충고를 듣고,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굳이 들추어내어 상처를 입히고, 분명 절차상, 원칙상 온당한 처신에 '정의감'이라는 무기를 들이대 항의전화를 걸고....

악의에 의한 피해는 차라리 항의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의에 의한 피해는 항의할 수도 없다. 상대방은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니까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선의'이자 '배려'일 수 있을까.

by 천지화랑 | 2009/10/23 14:45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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