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1일
대원수부 집무실에 어서오세요~

덤으로 교양따윈 캐리어 바퀴에 잘근잘근 밟아뭉개버린 용돌이 천지화랑입니다.
7. 이 블로그는 유키네 '숭배' 블로그입니다.
덤으로 쿄 재혼을 지지합니다.[후다닥!]

PS: 가끔 주인장이 스팸댓글 지우려다가 엉뚱한 댓글을 날려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방문객 여러분들의 넓은 아량을 바랄 뿐입니다.
# by | 2010/12/31 09:42 | 트랙백 | 덧글(66)


# by | 2010/12/31 09:42 | 트랙백 | 덧글(66)
이 소설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과 각종 설정들은 실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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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들어가는 것은 싫다.
덥다. 무지 덥다. 땀이 난다. 땀샘을 뚫고 배어나오는 땀 때문에 피부가 따끔거린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안녕하세요.”
“태정이 안녕.”
고개를 숙여 동아리 최고 짬을 자랑하는 도현 형님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서둘러 점퍼를 벗었다. 누가 틀어놓았는지 천장에서는 더운 히터 바람이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학관 4층에서 7층까지 부지런히 걸어온 참이었다. 후드티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나름 왁스칠한 머리가 엉망 되는 건 싫으니 참았다.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는 벌써 등판이 축축했다. 오늘도 집에 가면 빨랫감 하나 추가다.
“거울 누나, 잘 있었어?”
벗은 점퍼를 든 채, 동아리방 컴퓨터책상 옆에 놓인 전신거울을 향해 인사를 했다. 누가 보면 우리 동아리의 모토가 인생막장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도현 형님 동기인 04학번 선배에게 인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야, 이것들아. 누나 얼굴 관리 좀 잘 해드려라. 이게 뭐냐 이게.”
점퍼를 전신거울에 걸면서, 동아리방의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드는 주범인 09학번 남자 후배 놈들을 향해 타박 한 마디를 던졌다. 도현 형님은 통일된 큐슈의 역량을 끌어모아 시코쿠 정벌에 여념이 없으시고, 내 동기인 아현이는 저기 널브러져 있으며(그런데 인사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08학번인 회장 예림이는 잠깐 이 쪽을 보고 웃는 낯을 한 가운데(어차피 안 웃는 날이 없다) 언제나 동방 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인 동시에 내년에는 군대 갈 예정이니 회장으로는 뽑지 말아달라는 김기영과 박영창, 유희찬, 조구현 등등의 일당은 얼굴 전체로 그저 웃지요 허허허라며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 역시 우리 누나를 챙길 건 나 밖에 없다. 그런 사명감에 불타오른 나는 언제나 냄비받침 아니면 짱깨 그릇받침으로 쓰이는 명대신문 한 장을 반 찢은 후 사령부 행정병 시절 갈고 닦은 비비기 스킬로 훌륭한 마른걸레를 만들어냈다. 입김을 호호 불어대며 거울을 닦고 있으려니 막걸리에 사이다 타 마신 듯 정신이 몽롱하고 두뇌가 회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냉장고 위에 올려 둔 페브리즈를 뿌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누나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 입김을 호호 부는 것은 몹쓸 짓이 아닐까?
“안녕하세요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문이 벌컥 열리더니, 동아리 최고의 하이톤을 자랑하는 귀여운 - 우리 동아리 유일의 09학번 여학생 - 은지와, 이번에 우리 과 회장, 부회장으로 당선된 08학번 하라와 지현이가 줄줄이 동방에 들어왔다. 아현이와 거울 누나를 제외하면(그나마 아현이는 자고 있었고 거울 누나는 무생물이다. 어 근데 누구 하나를 뺀 것 같은데?) 온통 남자판이던 동아리의 성비가 대충 맞춰지자 드디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동생이 07년에 동아리 탐방하다가 봤다는 ‘인생막장 동아리’가 방금 전까지의 풍경일까 싶었다. 아니, 이건 세계멸망 직전의 풍경이 아니던가,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예림이가 자기는 여자가 아니냐며 내 오른팔을 주먹으로 쿵쿵 때리고 있었다. 팔굽혀펴기 350개로 단련해놓은 보람은 전혀 없었다. 누가 여자는 약하다고 했는가.
“오빠아~. 뭐 하세요?”
“거울 누나 씻겨주고 있어”
전신거울을 누나라고 부르는 나로서는 이럴 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지 왠지 난감하다. 거울 닦는다는 말이 왠지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정말 누나를 물건 취급 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말이다,
“야 임마. 누가 지금 내 동기 함부로 손 대래! 내 동기 함부로 손 대지 마!”
“와아, 너무 하시네 말입니다. 04들은 05랑 사귀는데 05가 04 누님 씻겨드리는 건 왜 안 됩니까?”
제길, 또 나온다. 이놈의 다나까 말투. 전역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이 말투는 아무래도 불치병이 아닌가 싶다.
호흡곤란 크리를 간신히 넘기며 누나의 세수(!)를 마친 후, 좌복 위에 올려두었던 내 점퍼를 거울 위에 씌웠다. 은지는 조만간 있을 동북아정세론 시험 문제에 대해 하라와 지현에게 물어보았고, 과 후배의 전공필수 시험 질문에 도현 형님이 합세하셨고, 덕분에 같은 수업 듣는 영창이가 여기에 들러붙어버렸다. 아현이는 여전히 자고 있고(좌복 저렇게 쌓아놓고 널브러져 자면 허리 안 아플까) 기영은 무슨 알아듣지도 못할 프랑스어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구현이는 그 새 화장실 간 모양이었다. 희찬이는 또 어디로 갔나 싶었더니 역시 좌복 깔고 자고 있었다. 실로 변화 무쌍한 동방이었다.
-철컥!
“안녕……. 야, 뭐하냐?”
“엉? 안녕.”
거울 누나에게 입힌 점퍼 지퍼와 단추를 다 채우고 허리띠를 매어주려는데 동방 문이 열렸다. 처음엔 구현이가 돌아왔나 했지만 들어온 것은 내 동기 - 하지만 나이로는 현역 최고 누님인 - 라은누나였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깨어난 아현이도 내 쪽을 보자마자 “야, 저거 뭐야!”라며 놀란 소리를 냈다. 다른 여자애들도 내 쪽을 보더니 거울을 가리키며 웃는다. 뭔가 민망한 웃음소리랄까나.
“이게 뭐야. 무슨 거울한테 옷을 입혀!”
“겨울이라 누나도 방에서 혼자 추웠을 텐데 옷 뜨시게 입고 있어야지.”
“으이그. 내가 못 살아.”
평소엔 나이차가 안 나 보이는 누나지만 이럴 땐 확실히 나보다 3년 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만. 태클 들어 올까봐 해 두는 말이지만 전 절대로 우리 동기들에게 아리가또 치는 것이 아닙니다, 도현 형님. 백날을 쳐봐야 밥 한 끼 안 사주지만. 흑.
“근데요 오빠아~. 오빠는 왜 거울보고 누나라고 불러요?”
한참 도현 형님과 하라와 지현에게서 집중 과외를 받던 은지가 나에게 물었다. 사정을 설명하자면 복잡하다. 그리고 난 복잡한 이야기 배배 꼬아서 이야기하다가 결국 논점 일탈하는 데 뭔가 특출난 능력이 있었다. 대답 대신 지그시 도현 형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현 형님께서는 얕은 한숨을 천장을 향해 흘리셨다.
“은지야, 오빠는 동기가 한 명도 없잖니?”
“네에.”
“그래서 오빠가 스스로 동기를 만든 거야. 05 애들 기모임 하고 있을 때 오빠는 동방에서 내 동기랑 마주보면서 한 잔 착 땡기는 거야.”
아아, 어찌 잊으랴. 언제더라, 아마 나는 아직 용산에서 땡볕에 염분을 빼앗기며 생활전선 최전방에서 대한민국 IT산업의 발전을 위해 죽어라 뛰고 있을 그 시절이었던가. 지영인지 희원이인지 누가 05 기모임 했다는 글을 올리자 도현 형님께서 댓글을 다시기를 ‘난 내 동기 동방 전신거울과 한 잔 해야겠다.’라고 달아놓으신 것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 동아리에 04학번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로되(그것도 여동기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04학번 중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도현 형님께서는 04학번 중에서 유일하게 동아리에 남아 지금 재학생 왕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계셨다.
“근데 도현 오빠는 그렇다고 쳐도, 태정 오빠는 왜 거울을 그렇게 애지중지해요?”
“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딱히 과 선배에 학회 선배에 동아리 선배에 해군 선임이기까지 한 도현 형님의 하나뿐인 동기는 내게도 소중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누나 하나 있으면 좋겠단 말야~! 으헝헝헝.”
라은누나와 아현이는 거울을 껴안은 내게 반응조차 없었다. 다만 도현 형님께서 “내 동기한테 부비대지 마!”라며 견제 넣으실 뿐.
“하이고, 정신이 증발했네.”
08, 09학번들이 슬금슬금 사라지고, 한참 레포트 작성하던 라은 누나도 집으로 가더니, 9시가 지나자 도현 형님과 아현이도 집으로 돌아갔다. 오래간만에 극세사 전기장판 - 이라기보단 전기방석이랄까 - 을 독점하게 된 나는 한 번 극세사 전기장판 위에 누워볼까 했지만 이건 허리나 어깨 찜질용으로 쓸 게 아니면 눕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키가 작은 졸업생 지영이라면 모를까.
22시 35분. 금요일 저녁이니 송호가 선덕여왕 보러 올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TV 틀어서 볼 만한 프로그램도 없었다. 군대 있던 시절이라면 VJ특공대를 보며 KBS 이런 X박새X들 너님들은 지금 나를 말려 죽이려는 건가혀 흐헝헝헝 거리고 있었겠지만 1주일 내내 점심을 학관에서 새로 개시한 1천원짜리 떡볶이나 편의점의 1200원짜리 주먹밥이나 선생님께서 가끔 던져주시는 각종 먹을 것으로 때워봐라. 이젠 TV에서 나오는 먹을 것 드립 보고 열 내는 것도 지친다.
한 달 동안 손을 안 댄 삼국지가 나를 유혹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일단은 유일한 과제물인 북한 군사론 레포트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19일까지 제출하면 되니 아직 2주도 넘는 여유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여유 부리다가 시험주간이 되어서야 밤샘하면서 레포트 작성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이번에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마는, 그렇다고 해서 꼭 집에도 안 가고 동방에 남아야 하는 노릇이라니 뭔가 한숨이 나온다. 집에 가는 1시간이면 A4 4장을 타이핑 할 수 있긴 하지만.
교수님 스타일을 맞춰 드리기 위해 거의 모든 내용은 수업시간에 받은 프린트물로 채워 넣고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의 성적은 상대평가제다. 점수 잘 받고 싶으면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뭐 근거는 없는 이야기지만.
그러므로,
절대로 1시간 레포트 쓰다가 싫증나서 시간 때우려고 인터넷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내가 들어가는 곳은 뻘글의 집합소 디씨 밀갤 따위가 아니라 나름 넷상의 고수들은 다 모여 있다는 이글루스였다. 간혹 사론곡필이라든가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거야 피하면 되는 것이고.
“이건 뭐야.”
이글루스에는 26개의 밸리가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5개의 밸리가 실시간으로 메인에 떠오르게 되어 있다. 보통 메인에 잘 올라오는 밸리는 뉴스비평이나 역사, 영화, IT, 스포츠, 방송연예 등.
그런데 오늘은 간만에 연애 밸리가 최상단으로 올라와 있었다. 태생이 연애 밸리와는 관련이 없는 몸이다 보니 굳이 눌러볼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오늘의 인기글 최상단에 떠오른 글은 바로 연애 밸리 최고 인기글이었다.
-크리스마스에 할 것들 목록-
“이런 제…….”
부처님 앞이니 차마 그 이상의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추워지려 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글을 눌러보았다. 연애 밸리 이글루저들과는 전혀 친하지 않으니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적이다!
크리스마스에 여친님과 어디에서 뭘 먹고 어디에서 뭘 할 지를 이토록 상세하게 계획해 공개하다니, 범죄다. 어째서 1천만 서울시민들의 공공재산인 청계천에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고백의 벽 따위가 존재한단 말인가. 당시 서울시장이 누구인지 밝혀 처단해야 마땅할 일이다!
라고 외치며 달력을 찾아보니, 크리스마스는 벌써 21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올 겨울엔 반드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서 24일 0시부터 시작되는 48시간 취침에서도 벗어나고 커플들을 뜯어먹으며 자금도 확보하겠다는 결심을 이행하려면 서둘러야 할 듯싶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계절학기 들어야 펑크 난 학점 때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계절학기 언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르잖아?
난 안 될 거야, 아마.
“제길, 5학점 철회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머리 쥐어뜯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별로도 아니고 전혀.
도대체가 후임이란 것들이 군 생활에 도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선임은 돈이 없어서 남은 연가도 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판국에 후임 놈들은 다들 외박 나가야 한다고 주말 당직을 바꿔달라니, 세상천지에 이런 군대가 또 어디 있으랴. 덕분에 난 사령부에서 유일하게 한 달에 당직 세 번이나 서는 병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이런 유명세 따위, 해상식당 강아지한테나 줘 버려!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녀석 - 이름이 ‘오리’였던가 - 은 이래봬도 나보다 3기수 선임으로 대우받고 있으니 실로 개만도 못한 팔자였다. 군대 빨리 올 걸.
하필이면 당직이라고 억지로 먹어 둔 아침 군대리아는 먹은 지 10분도 안 되어 장 활동을 과다하게 촉진시키고 있었다. 오늘 당직 간부들이 해병대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난번에 같이 당직 섰던 해병대 여군 장 모 하사는 해병대답지 않게 수병들에게 잘 해주지만.
-똑똑똑!
“들어가도 좋습니까.”
-들어와.
여군이다. 어제 당직자는 죄다 남군이었으니 안에 있는 여군은 십중팔구 오늘 당직자다. 내가 아는 한 사령부에서 본청당직 서는 여군들 중에서 제대로 당직업무 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우리 부서 행정장 정도가 있지만 이 누님도 오늘 당직은 아니었다. 그렇게 사령부 여군들을 소거하다 보니, 오늘 당직은 왠지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에 관자놀이가 아파왔다. 아니, 차라리 내가 PPT 작성에 각종 일지까지 죄다 맡아버리는 쪽이 속 편하긴 하려나.
최대한 표정을 없앤 채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필! 스으응……. 저, 박도현 수뱀?”
“어, 왔냐. 오늘 당직 잘 스레이.”
분명 도현 형님이었다. 이 분 해군 입대했으니 여기로 발령 올 수도 있긴 있다.
그런데 514기가 어째서 내가 병장 말봉 되도록 전역을 못 하고 셈당 입은 채 당직 서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박도현 수뱀, 왜 여기 계십니까?”
“어, 너 몰랐냐? 나 유급지원병이야.”
“네?”
유급지원병은 분명 간부 근무복 입고 일하지 않던가. 셈당 입는 유급지원하사는 본 적도 없었다. 지통실 조현식 수병, 아니 하사도 하사 근무복 입고 다니던데. 게다가 둘 다 전탐 아니던가. 그런데 전탐 하사관이 왜 본청 당직을 서고 있지?
“나 유급지원병 하면서 행정으로 옮겨왔어. 너 이제 전역할 때 안 됐냐?”
“네, 뭐 아마 다음 주쯤에 말년 나갈 것 같은데…….”
상관에게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결례다. 목훈대 일병 꼬꼬마는 내게 말도 못 붙이고 컴퓨터 앞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야, 최태정!”
“에에……. 이아현 중사님……이 왜 여기 계신가 말입니다.”
애초에 이아현 중사라는 존재가 있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
“최 수병, 오늘 잘 해야 돼. 사령부 최고 베테랑이라면서? 너한테 거는 기대가 커.”
“임마 이거 배 탈 때 아주 소문이 쫙 퍼졌어. 응, 네가 편대 귀염둥이였다면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곤란한데 말입니다.”
박도현 수병님, 아니 박도현 하사님이야 애초에 어떻게 해군 들어왔는지 익히 알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이아현 중사님부터는 어쩌다가 입대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것도 실례가 아닌가 싶었다. 그나저나 이아현 중사님과는 친해지면 뭐라고 불러야 하려나. 어쨌거나 나와 동기인데 아현 누나라고 할 수는 없고, 그보다 도현 형님, 아니 박도현 하사님은 처지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다.
“필승! 저, 수병님. 인수인계…….”
“아, 그래. 뭐 특이사항 있냐? 없지? 없으면 가서 자라.”
“네, 필승!”
부서를 알 수 없는 김기영 일병과 3초짜리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니, 이 기합 빠진 인간은 당직실을 나가자마자 “앗싸! 밥 먹어야지!”라 외치며 복도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전역한 이후 3함대 본청 당직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자 없던 두통이 몰려왔다. 전역자 면담 할 때, 이야기 꺼내 볼까나.
“저, 근데 오늘 당직자 뭐 이럽니까? 저부터 시작해서 부직사관님까지 다 원래 명단이랑 안 맞습니다.”
“그러게? 나도 부탁 받고 바꿔 준 건데?”
“이거 어디에다가 물어봐야 되냐? 인사 어디에 물어보면 돼?”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하아.”
애초에 3함대 사령부 인사 명단에 박도현 하사나 이아현 중사가 있을 턱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면 오늘 당직 명단을 인사행정과에 전화해서 물어봐야 하나 하고 머리를 굴리며 인트라넷 게시판에서 당직변경 명령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덜컹!
“야, 뭐 하냐?”
“안녕안녕!”
“이……. 이거 뭡니까.”
어째서 당직사관 송라은 상사에, 당직사령 박지영 대위라는 요상한 조합이 등장하냔 말이다!
그 다음은 아마 누가 뭐라고 하건 상관없이 당직실 뒤쪽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때맞춰 사령관이 출근했던가.
-스윽
영창 갈 일은 없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설마 헌병이 꿈의 경계를 넘어와서 날 잡으러 오진 않으리라. 박도현 수뱀, 아니 도현 형님. 군대 끌려가는 꿈만 개꿈은 아닙니다.
일단 방금 전까지의 상황은 꿈이었으니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동방에서 좌복 깔고 누워서 잤더니 허리와 어깻죽지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경상관 지하 시절엔 이렇진 않았는데.
그보다 문제는,
-스르륵!
‘누구?’
슬쩍 눈을 떠서 바로 옆에 놓아둔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6시 12분. 아직 밖은 어두컴컴했다.
이런 시간에 버스 타고 학교 올 사람은 없다. 슬쩍 눈을 떴다. 학교 앞에 사는 지영이나 기숙사 사는 하라인가 싶었지만, 곧은 생머리인 걸 봐선 둘 다 아니었다. 역시 라은 누나인가.
일어나서 불 켜고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하루에 7시간은 자야 한다는 사상을 가진 나다. 아직 목표 시간에 1시간 정도 모자르다. 하지만 누나가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며 동방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을 실눈 뜨고 지켜보고 있자니 미안해지긴 했다. 일어나면 동방 깨끗이 쓸어놓기라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고 있으려니, 청소를 다 끝낸 것인지 더 이상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책 넘기는 소리도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누워서 자나 싶어서 슬쩍 몸을 옆으로 돌려 실눈을 떴다. 하지만 테이블 저 편은 텅 비어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있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아, 깼다.”
“에에…….”
라은 누나도 아니었다. 라은 누나가 자고 있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럴 시간에 열심히 일본어 텍스트를 읽겠지.
-펄럭!
“저, 저기!”
황급히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행히 위아래 옷은 다 제대로 입었다. 바지는 도현 형 츄리닝을 잠깐 빌렸지만.
“누구세요?”
혹시 동아리에 내가 모르는 휴학생 선배라도 있었던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지금 휴학한 주현이나 지향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선배라고 하기엔 어려 보였다. 하긴 우리 동아리 여자들 중에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마는.
“너, 태정이지?”
“네. 그런데…….”
“나 모르겠어?”
“에에…….”
“네가 나 가장 많이 챙겨줬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 죽는 내가 이런 아리따운 아가씨를 챙겨 줄 여유가 있었으면 토익 점수라도 올려두었을 일이다.
“자아. 내가 누구일지 맞춰보세요.”
이건 마치 서울시 파란 버스 한 대 갖다놓고 몇 번일지 맞춰 보라는 수준이다.
자기 전에 감지 않아서 왁스로 떡이 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동아리방을 휘 둘러보았다. 잡동사니가 몇 가지 정리되긴 했지만 지난밤과 별 다를 것은 없었다. 컴퓨터도, 내 노트북도, 기타들도, 키보드도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심지어는 09들이 창립제 때 차력 용으로 구해왔던 각목마저 그대로였다.
“아…….”
뭔가 하나가 없었다.
다시 아가씨 - 말 하는 것을 봐선 나보다 누나 -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7시가 가까워지면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대충 모습을 눈으로 분간할 수 있었다. 겉에 입고 있는 옷은 분명히,
아현이가 군복같다고 말했던 내 점퍼였다.
“설마…….”
누나(아마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내 손가락이 천천히 냉장고와 컴퓨터책상 사이의 ‘텅 빈’ 공간을 가리켰다.
“응, 맞아.”
누나(아마도)는 멍한 표정을 지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쌩긋 웃었다.
“나, 거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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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시작하는
로리로리한 04학번 전신거울 누나와 함께 온 서울시내를 무대로 펼치는 학원거울판타지!
를 쓰고 싶지만.... 현실은 시궁창 OTL
자, 이번 크리스마스엔 무슨 알바를 해야 할까요?
# by | 2009/11/29 16:57 | ♧:기타 소설(쪼가리):♣ | 트랙백 | 덧글(1)
여기는
도덕대
발신 : 총사령부 대원수
수신 : 예하 전 대원
구분 : 일반
제목 : 2009년 적 추계공세 대비 Cocked Pistol 발령
1. 금일 22시를 기하여 Cocked Pistol을 발령함.
2. 현시각 이후 Cocked Pistol 해제 전까지 예하 전 병력은 적과 조우시 교전활동을 허가함.
3. 현시각 이후 Cocked Pistol 해제 전까지 예하 전 병력은 상부의 지시가 없을 경우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후의 1인까지 적의 공세에 맞서 맡은 바 책임을 완수할 것을 당부함.
4. 동해안 지역 주둔 병력은 경계, 순찰에 만전을 기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철통같은 해안경계태세가 커플제국군으로 인하여 흐트러지는 불상사가 없도록 적극 협조할 것.
5. 빼빼로는 과다한 당분 섭취로 몸을 둔하게 할 뿐이므로 예하 전 대원은 해군창설기념일, 제1차세계대전 종전기념일, 농민의날, 섬유의날, 가래떡데이 등 뜻깊은 날을 우선적으로 기릴 수 있도록 할 것.
끝.
# by | 2009/11/10 22:15 | ☆:아지트:★ | 트랙백(1) | 덧글(17)

# by | 2009/11/10 15:59 | ☆:걍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47)
# by | 2009/11/10 12:54 | ☆:걍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37)
# by | 2009/11/05 22:07 | ♧:기타 소설(설정&자료):♣ | 트랙백 | 덧글(5)

# by | 2009/11/04 11:29 | ☆:잡다한 감상문:★ | 트랙백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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